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 전문 매체 조선비즈가 30일 오전 8시 40분부터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제12회 유통산업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유통의 미래: 브랜딩과 AI(인공지능)가 이끄는 혁신’이다. 이번 행사에는 450여 명의 유통업계 관계자가 참석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축사에서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디지털 혁신을 성공시키고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요소는 결국 협력과 신뢰”라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유통 환경 변화에 발맞출 수 있도록 대규모유통업법 등 규제 체계를 돌아보고 적합성과 시의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유통 산업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불합리한 제도가 있다면 개선할 것이며, 필요한 다양한 입법적 노력을 할 것을 약속드린다”라며 “이번 유통산업포럼이 브랜딩과 AI를 활용한 유통산업의 새로운 장을 함께 열어가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AI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은 소비 트렌드는 물론 유통산업 전반을 바꿔 놨다”며 “서울시는 시민 체감도가 높은 교통, 경제, 복지와 같은 분야에 AI를 기반으로 한 브랜딩을 획기적으로 적용해 시민 삶의 질과 편의를 향상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AI 적용한 유통, 부가가치 최대 910조원
기조연설은 수재인 나이트 전 월마트 캐나다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서비스 부사장이 맡았다. 그는 AI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유통산업 전체에 걸쳐 4000억~6600억 달러(약 550조~910조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은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동력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수재인 전 부사장은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려면 맞춤화한 쇼핑을 제공해 주는 단계를 넘어 필요한 물건을 직접 채워주는 단계까지 제공해야 한다”며 “특정한 식품이나 물건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건 AI지만, 직접 소비자 가정에 들어가 냉장고에 정리를 해주는 건 자격을 갖춘 월마트 직원”이라고 했다.
정성호 로레알코리아 최고혁신책임자(CTO)는 로레알의 AI 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소개하면서 “뷰티 테크는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레알의 생성형 AI 챗봇 ‘뷰티 지니어스’를 사례로 들었다. 사진 정보를 활용해 피부 톤과 상태 등을 확인하고 적합한 화장품이나 화장법 등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다.
정 CTO는 “생성형 AI 등의 기술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사업하는 방식을 완전히 해체하고 있다”면서 “개인의 체격과 피부, 정신 상태 등에 집중해 초개인화된 풍성한 경험을 우리의 뷰티테크로 제공하겠다”라고 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작가는 “기술의 발전으로 오프라인 리테일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며 “앞으로는 만나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장소에 유통이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여의 5단계’를 제시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여의 5단계는 전문성, 배려, 공감, 기능, 존재다. 존재로 갈수록 부가가치와 가격 민감도가 낮아진다. 카드 결제 취소, 상품 안내 등 존재와 기능의 영역을 넘어 공감, 배려, 전문성 등을 만들어야 부가가치를 만들고 고객과의 관계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日백화점·F&B 전문가도 참여... 혁신 통해 새로운 기회 창출
이번 포럼에는 일본 유통 전문가들도 함께했다. 타나카 토모아키 일본 다이마루 마츠자카야 백화점 경영전략본부장은 자사의 3가지 비전이 오리지널리티(독창성), 로컬리티(지역성), 서스테이너빌리티(지속가능성)라고 소개했다.
그는 “다이마루 마츠자카야 백화점은 단순 유통 회사를 넘어 미디어 사업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백화점이) 점포와 온라인 사이트에 제품을 소개하는 매체의 역할과 이용자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오츠카 류우타 가루비 식품건강사업추진부장은 헬스케어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 가루비의 혁신 스토리를 소개했다. 그는 “기능성 식품을 포함해 영양가 높은 식품이 넘쳐 나고 있지만, 생활 습관으로 인해 병을 앓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자칩과 스낵을 만드는 가루비가 건강 관리 플랫폼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을 평생 즐기려면 건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브랜드 혁신 전략’을 나누는 토론도 진행됐다. 좌장으로 나선 김창주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엔데믹(전염병의 세계적 확산)에 접어들면서 건강 지향적 소비를 강조하고, 기업에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소비자가 기업 활동, 상품, 서비스 전반에 걸쳐 진정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양오 이마트 브랜드전략 담당 상무는 “브랜드가 의미 있으려면 다른 기업은 주지 못하는 독보적인 경험을 소비자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마트는 유통업의 본질이 소비자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제품을 긍정적인 기억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ESG 경영을 모색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진서연 배우를 좌장으로, 이우봉 풀무원(14,690원 ▼ 250 -1.67%) 전략경영원장과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기획부문 부사장이 패널로 나서 ‘미래 세대를 위한 ESG와 브랜딩’을 주제로 토론했다.
김 부사장은 “ESG는 어차피 완벽할 수 없기에 일단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우 대표는 “심각한 기후 환경 속에 경영인으로 있는 입장에서 앞으로 ESG 경영의 방향성은 환경에 치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풀무원은 영리 기업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기업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관에 경제·사회·환경의 가치를 명시했다”며 “영리 추구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공익 가치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열광하는 브랜드 만들려면... ‘소비자와 문화’의 이해 필요
‘사모펀드가 본 유통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 임유철 대표는 쿠팡과 네이버를 예를 들어 “이커머스가 자금력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로 외형을 확장하면서 일상생활 곳곳에서 지형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외형적 스케일 업(scale up)과 에코시스템(생태계) 확장이 고 성숙기에 도달한 한국 이커머스 시장 핵심 키워드”라고 분석했다.
F&B와 패션, 공간 전문가들의 브랜드 전략을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AI를 뛰어넘는 브랜딩의 힘’을 주제로 강연한 유정수 글로우서울 대표는 “현재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을지언정, 장르에는 우열이 없다”면서 “우리가 지향할 것은 장르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레이드(등급)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몽탄’과 ‘고도식’, ‘산청숯불갈비’ 등을 기획한 정동우(바비정) 미트포포 대표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그 사례로 몽탄의 기획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에는 짚불에 송어를 구워 먹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 문화를 기반으로 우대 갈비를 파는 집을 기획하게 됐다”며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면서도 그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소비자들이 인정해 줬다”라고 했다.
박주원 시몬느 패션 컴퍼니 대표이사는 ‘글로벌 하이엔드 패션 산업의 흐름과 한국, 아시아의 역할’을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핸드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인 시몬느는 마크제이콥스, DKNY, 랄프로렌, 코치 등 글로벌 명품 핸드백을 생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양적 성장을 브랜드 전개의 목표로 두면 패션 감도 등을 타협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브랜드 성장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하며 “럭셔리 상품이나 하이엔드 패션을 사치재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기술력과 쏟은 시간, 전문성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전통과 지역성의 동시대적 표현’을 주제로 강연한 공간 디자이너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는 “현시대 생활방식은 대부분 서양에 맞추어져 있기에 전통이 살아남으려면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이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외려 연구하고 되찾아 한국의 미래를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 자원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양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바이 디자인’이 꼽은 세계 100대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허철 무신사 글로벌 본부장은 K패션 성공방정식을 짚었다. 허 본부장은 “현재 한국 브랜드 중 글로벌에 소구력을 가진 브랜드들은 국내에서도 잘 해왔던 브랜드”라면서 “한국에서 먼저 명확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 브랜드들은 아직 진입기”라며 “유니클로는 히트텍이라는 히트 상품으로 글로벌 성공을 거뒀다. 한국도 특정 브랜드가 하나의 시그니처 히트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김은영 기자 , 유진우 기자 , 최효정 기자 , 양범수 기자 , 방재혁 기자 , 민영빈 기자 ,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