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세닌 황 듀크대 의대 교수 "데이터는 의료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데이터는 의료 제공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병원들이 여전히 데이터에 대한 소유의식을 갖고 있고, 데이터 활용이 가져올 장점과 이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혁신 속도가 더딥니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18’에 기조 연사로 참석한 에릭 세닌 황(Erich Senin Huang·사진) 미국 듀크대학교 의과대학(Duk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교수(MD·PhD)는 기자와 만나 빅데이터 시대를 맞은 병원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했다.

이날 황 교수는 전자의무기록(EHR), 유전자데이터 등 보건의료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를 ‘초식 공룡’에 비유했다. 크지만 뇌는 작고 똑똑하지 않은 진화 전 단계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병원들이 3차 산업혁명에 한발을 두고, 4차산업혁명에 한발을 내딛고 있는 진화 초기 단계에 있다"며 "방대한 데이터를 환자 치료에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추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병원의 행정가들이 근시안적으로 비용 발생 등 리스크 감수를 꺼려 새로운 기술 활용에 무관심한 태도가 병원의 혁신은 물론, 환자 생명 연장의 속도를 더디게 한다"고 지적했다.

◇ 머신러닝으로 환자 재입원·합병증 발생 예측

듀크대는 보건의료 데이터 과학에 중점을 두고, 크로스캠퍼스센터를 새롭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보건데이터과학의 힘을 실현해내기 위한 핵심기지인 ‘듀크 포지(Duke Forge)’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에릭 세닌 황 교수는 미국식품의약국(FDA) 위원 출신인 로버트 칼리프(Robert Califf) 박사와 함께 ‘듀크 포지’를 이끌고 있다. 로버트 박사는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자회사 베릴리 생명과학(Verily Life Sciences) 고위 경영진이기도 하다.

황 교수는 "듀크대병원은 빅데이터, AI 등 다양한 기술·도구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있고 또 새롭게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듀크대는 오바마 정부 당시 ‘ACO’라는 개념이 등장했을 때 머신러닝을 이용해 의료현장에서의 의료 서비스 질을 평가하고 재입원·합병증 위험 등 리스크를 예측·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ACO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의료개혁을 하면서 들고 나온 지불방식 및 의료공급자 기구이다. 특정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의료의 질과 경제적 성과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으로, ACO가 목표로 정한 비용보다 실제 지출비용이 적을 경우 절감액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받는 것이 핵심이다. 많이 절감할수록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갈 수 있다.

즉, 의료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수록 병원 경영에도 득이 되는 것이다.

듀크대는 ACO를 도입하면서 머신러닝 기반 모델을 개발하고 정부 보험 적용 대상 환자들의 과거 데이터를 학습·훈련시켜 미래를 예측·선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듀크커넥트케어라는 이름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모델 신경망 기반 타임머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환자의 과거 보험 청구, 의무 기록, 약물진단 기록 등 다양한 데이터를 보면서 6개월 뒤 재입원·수술 후 중환자 합병증 발생 등 위험을 예측·식별·정량화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머신러닝을 통해 32개 범주로 구분돼있는 환자들의 자료를 가지고 환자 160만명에 대해 매달 예측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정적인 알고리즘이 아니라 동적으로 계속 진화하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이를 통해 환자에 대한 의료의 질을 제고하고 보다 가치있는 헬스케어를 제공할 수 있게될 뿐 아니라 병원으로선 보상(인센티브)을 받게 된다"며 "우리는 이 시스템을 특정 환자군이 아닌 병원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데이터사이언스(데이터 과학)는 앞으로 의료계(병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병원은 의사-간호사-환자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한 곳인데다, 정부도 의료 지출과 의료 질을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데이터를 분석·활용해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이터과학’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IT기업이 병원보다 데이터 유동성 더 앞서 협업 필요

듀크대는 머신러닝·인공지능 개발은 듀크대 자체 기술력으로 해결하는 한편, 데이터 활용을 위한 과제인 ‘데이터 유동성(데이터 보관·처리 등)’에 관한 문제는 병원보다 강한 IT기업과 협업해 해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황 교수는 "듀크대 머신러닝연구소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과 함께 세계 10위권에 든다"며 "AI 개발을 위한 자체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 이를 활용해 의료시스템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듀크대 내에서 심장질환 환자들의 영상 자료를 딥러닝한 AI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있으며, 1년 내 임상현장에 적용해 혈관이 어느정도 막혀있는지 진단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 밖 기업들과도 협업한다. 황 교수는 "데이터 보관, 처리, 관리 등 ‘데이터 유동성’에 관한 기술은 기업이 병원보다 더 혁신적이라고 판단된다"며 "구글과 데이터 유동성 촉진에 관한 협력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블록체인이 데이터 보관·처리 등 유동성 문제를 모두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이 현재 AI 기반이 아닌 데이터 유동성을 촉진시키는 흥미로운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듀크포지의 목표는 가치중심 의료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듀크대병원이 ‘규모 기반 의료’에서 ‘가치 기반 의료’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한국의 의대생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의료계에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기술이 생겨날때마다 위기론이 있었죠. 하지만 의사의 임무는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책임져야 합니다.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해 가장 좋은 도구를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죠."

"게다가 현재 AI는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한가지 업무를 잘하는 데 특화돼있죠. 우리 의사들은 폐 질환 환자를 볼 때도 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뼈-조직-폐를 순차적으로, 모두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죠. AI는 우리의 수많은 업무 중 하나를 보조·지원해주는 수준의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일 뿐입니다. 앞으로 의사로서 질병을 더 잘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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