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푸드테크]⑤ 대체육을 ‘고기’로 표현해도 될까?… 법·제도 기준 마련해야

푸드테크가 외식업계의 인력난,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의 해결사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관련 기준 등 법·규제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대체육’을 두고 축산업계와의 마찰이 시작됐지만, 이를 중재할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다.

◇ 한우 농가 단체 “대체육 고기 아냐” 반발

1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한우 농가 단체인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지난 3월 성명서를 내고 “식물성 단백질로 만들어진 대체육은 육류와 영양소가 달라 육류를 대체할 수 없다”면서 “고기와는 다른 식품으로 인식되도록 법·제도적 정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래픽=이은현
그래픽=이은현

고기를 대체한다는 개념의 대체육은 이미 시장이 열린 푸드테크 산업의 핵심으로 꼽힌다. 콩에서 얻은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해 만드는 콩고기는 물론 식용 곤충 단백질을 원료로 한 대체육도 나왔다. 최근에는 동물 세포를 배양해서 만드는 배양육까지 등장, 품질이 개선되고 있다.

특히 대체육은 대규모 축산업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고 공장식 도축 같은 윤리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환경 등 가치를 소비의 기준에 두는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체육을 재료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물론 최근에는 밀키트(간편조리세트)와 편의점 간편식도 등장했다.

다만 국내에서 대체육은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의 주장과 같이 별도의 표기법이 없는 실정이다. 식품표시광고법상 고기를 원재료로 하지 않은 경우 ‘육’ 또는 ‘고기’ 표기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을 뿐, ‘비건’이라는 점을 표시하면 ‘식물성 대체육’으로 쓸 수 있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대체육이 고기를 완전히 대체한다기보다 현재의 축산업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문제는 대체육에 대한 규정이 없어 원재료에 따라 곡류가공품, 두류가공품 등으로 혼재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미국 ‘육류광고법’ 시행… 유럽도 표기 지침 마련

푸드테크 투자가 활발한 해외에선 2010년대 대체육 관련 규정이 이미 마련됐다. 특히 미국에선 2019년 고기가 아닌 상품에 고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육류광고법’이 시행됐고, 대체육류에는 그 표면에 원재료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에 앞선 2018년에는 육류처럼 붉은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헤모글로빈 섭취 실험 데이터를 받아 안정성 입증도 거쳤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별도의 안전 규정을 마련해 새로운 원료는 인체에 무해하고 알레르기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의회 농업위원회는 고기가 포함되지 않은 식품에 버거, 스테이크, 소시지 등 육류와 관련된 음식을 상징하는 명칭을 식물성 제품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유럽연합(EU) 규정 17조 1169/2011)을 마련했다. 대신 채식 튜브, 콩 슬라이스 등의 용어를 쓰도록 하고 있다.

◇ 기준 없는 국내 푸드테크 시장, 규모 파악도 불가

전문가들은 국내 푸드테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금 더 발 빠른 기준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푸드테크는 식품 생산과 유통, 소비 전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기준 제정의 미비가 대체육은 물론 푸드테크 산업 전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선 푸드테크 시장의 규모조차 정확히 추산되지 않고 있다. 푸드테크와 관련한 수출입 세번(품목분류) 및 식품 제조·유통 통계분류가 아직도 정의되지 않은 탓이다. 예컨대 대체식품 수입자는 관세청에 수입신고를 할 때 기타식품이나 두류가공품으로 신고해 수입하고 있다.

박미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푸드테크는 과거의 식품 제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데 여전히 기존 식품 산업에서 썼던 원료 중심으로 푸드테크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푸드테크 산업은 유통, 서비스로 확장돼 가는데 이에 대한 산업 규모조차 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만든 배양육 샘플. /조선DB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세포를 추출한 뒤 이를 배양해 만든 배양육 샘플. /조선DB

기준 미비는 지나친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푸드테크 기술인 쿡앤루트(cook-en-route)가 대표적이다. 차량에 주방을 설치해 주문받는 즉시 조리·배달하는 쿡앤루트는 국내에서 사업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식품위생법에 주방은 고정된 곳에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어서다.

배양육 시장도 사실상 국내에선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축의 줄기세포를 떼내어 세포 배양에 의해 육류 제품을 생산하는 배양육은 배양지에서 줄기세포를 떼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약사법에 따라 배양지는 의약품에만 사용할 수 있다. 식품으로서 자격을 갖지 못하는 셈이다.

푸드테크 업계 한 전문가는 “배양육을 만드는 과정에 유전자변형생물체(GMO) 기술이 활용된다거나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형성 자체를 막아선 안 된다”면서 “새로운 식품에 맞는 과학적인 안전성 평가 기준과 인정심사 체계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올해 기준 마련 나서… 연구개발 방향 설정도

정부는 올해 들어 부랴부랴 대체육 등 푸드테크 관련 기준 마련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초 대체육 등을 생산·판매하는 기업들을 모아 의견을 청취했고, 지난 7월에는 박주봉 중소기업옴부즈만이 직접 나서 대체육 관련 표기 방침에 대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당시 식물유래 대체육을 생산하는 한 기업 대표는 박 옴부즈만을 향해 “농식품부 등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대체육 등 시장 활성화를 꺼내들고도 정작 기준 마련은 미루고 있다”면서 “신생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표기방법 지침을 신속히 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식약처는 이르면 이달 대체육과 배양육 등에 대한 기준 제정을 위한 자문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내년 관련 기준 제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세포 배양 등 신기술을 적용한 신소재도 식품 원료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기준·규격 인정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업진흥청을 중심으로 푸드테크 분야 국가 연구개발 방향 설정도 진행하고 있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푸드테크가 농식품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푸드테크 분야 국가 연구개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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