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타버스 세계관 만든 필립 로즈데일 “통제 없는 서비스가 메타버스 주도권 쥘 것”

“메타버스의 진화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바타, 가상화폐, 디지털 상품 시장으로 이뤄진 변화의 조합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화의 열차는 이제 막 출발했다.”

필립 로즈데일의 2019년 강연 장면. /UW 리얼리티 랩 유뷰트 캡처

그저 소설 속 상상의 산물이었을 뿐인 ‘메타버스’를 현실 세계에 구현한 필립 로즈데일 린든랩 창업자는 지난 16일 조선비즈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만든 인류 최초의 메타버스 플랫폼이자 게임 ‘세컨드라이프’는 미국광고연맹의 2007년 보고서에서 2006년 미디어 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놀라운 현상으로 꼽히기도 했다.

세컨드라이프는 메타버스라는 정보기술(IT)의 빅뱅을 알렸다. 유명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 속 세상에 큰돈을 투자했고, 2008년 세컨드라이프의 주민은 1200만명을 넘어섰다. 세컨드라이프의 가상경제 총액은 5억달러, 우리 돈으로 6000억원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가리켜 ‘메타버스의 첫 번째 물결(1st Wave)’이라고 불렀다. 당시 필립 로즈데일 창업자는 “나는 게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만든 것이다”라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서울시가 주최하고, 조선비즈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2021’의 주제는 ‘코로나가 앞당긴 새 질서, 새 기술’이다. 여러 기술 가운데에서도 스마트클라우드쇼가 주목한 가장 중요한 흐름은 ‘메타버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사람들은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 세계에 모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묶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물리적 거리를 한 번에 좁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메타버스를 다시 이 세계에 불러냈다. 바로 두 번째 파도(2nd Wave)다.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스마트클라우드쇼 2021은 ‘메타버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필립 로즈데일을 기조연설자로 초대했다.

로즈데일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메타버스의 근원, SF(사이언스 픽션) 소설 ‘스노우 크래시’였다. 그는 “작가 닐 스티븐슨이 ‘스노우 크래시’에서 정립한 ‘메타버스’ 개념은 원래 디스토피아(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내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문학 사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라며 “애초의 메타버스는 대부분이 불행하고, 성공할 수 없는 데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제하고 광고가 가득한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도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본다. 로즈데일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강제한다”고 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에서 강연하고 있는 필립 로즈데일. /퓨처 오브 스토리텔링 유튜브 캡처

반대로 메타버스가 가진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이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사람들은 그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며 “이게 메타버스의 가장 긍정적인 잠재력이다”라고 했다.

다만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것은 아직도 대다수 사람에게 낯설고, 꺼려지게 되는 일이다. 가상 세계의 나와 현실 세계의 나를 ‘같다’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로즈데일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가상 세계에서 살거나, 사람을 사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전 세계 대다수는 여전히 실제 생활에서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일하고 교제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로즈데일은 기술적인 발전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로즈데일은 “사람들이 디지털 아바타로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다고 느끼도록 불편한 VR(가상현실) 고글 대신 얼굴 애니메이션, 몸 트래킹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요즘 메타버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소위 ‘돈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즈데일은 이런 ‘돈이 되는 메타버스’는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메타버스라고 본다. 그는 “현재의 메타버스 물결은 많은 대기업들로부터 촉발되고 있는데, 이런 대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온라인 사회화’에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세컨드라이프의 사례에서 증명한 것처럼 메타버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에서 발생한 소액 거래 수수료가 돼야 하고, 연간 5억달러 이상이 발생해야 한다”라며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개인정보 보호나 인공지능(AI) 기반 광고에 위반 사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작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점점 더 정교해지는 AI 기반의 광고들이 소비자들을 도박이나 필요하지 않은 상품에 중독시킬 수 있다”라며 “또 메타버스와 가상화폐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로즈데일은 훗날 메타버스 시대에서 어느 하나의 강력한 통제력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에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과 같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에서의 강력한 통제력은 사람들의 생각을 막고,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로즈데일은 “현재의 메타버스에서 하나의 소통 방식만이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라며 “여러 의견이 메타버스 안에서 충돌할 때 중재 혹은 특이한 성격을 가진 특정 이용자 집단이 플랫폼을 지배하게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만약 이들이 목소리가 크고 무례한 이들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라며 “메타버스는 다양한 사람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로즈데일은 메타버스의 미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편견이나 광고, 소비자를 감시하는 기능이 없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적으로 모두 가상 세계에 원활하게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그는 “이런 조건을 맞춘 회사가 메타버스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라며 “젊은 이용자들은 그들의 선택이나 상호작용에 대해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여러 견해를 밝힌 로즈데일이지만,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마지막으로 로즈데일은 “메타버스의 미래는 정형화할 수 없다”라며 “아바타, 가상화폐, 디지털 상품 등으로 촉발된 변화의 조합은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식해야 한다”라고 했다.

= 박진우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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