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머루로 레드와인 만드는 경북 김천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산머루로 레드와인 만드는 경북 김천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머루 수확 늦춰 당도 높이고 신맛 줄여,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으로 불려

3년 이상 오크통 숙성으로 바디감도 높여...작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

"프랑스에 크라테와인 수출하고 싶다...프랑스 와인과 시음 자신 있어"

프로복서 출신... "자연의 링에서 한국와인 챔피언 되겠다"

"자연의 링에서 한국와인 챔피언이 되겠다."

경북 김천의 유일한 와인 양조장인 수도산와이너리의 백승현 대표는 프로복서 출신이다. 고교시절 아마추어로 권투를 시작해, 군 제대 후 주니어라이트급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세계챔피언이 된 오광수, 동양챔피언인 김성호 선수와 같은 체육관 소속으로 뛰었다. 3전 2승 1패.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지만 세번의 경기만에 보안회사 경호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대 후에 술, 담배를 멀리하지 못해 건강관리를 잘못한 탓"이라고 그는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 보안업체 직원으로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하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는 고향인 김천으로 내려갔다. 농사를 짓고 있던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의 어르신은 쌀농사를 짓는 논 외에 5000평의 밭에 담배, 약초 농사를 짓고 있었다. "담배밭에 산머루를 심어 제대로 된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회생활은 실패했지만, 산머루로 만든 한국와인만큼은 한국 최고를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받아 산머루를 심기 시작한 것이 2001년. 머루밭이 해발 1300m 수도산 자락에 있어 ‘수도산와이너리’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고, ‘한국와인 챔피언이 되겠다'던 그의 약속은 최근에야 이뤄졌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는 프로복서, 보안업체 보디가드 등으로 일하다가 2001년 고향인 김천에서 산머루를 키우기 시작했다. /수도산와이너리 제공

지난 2월 그는 대한민국주류대상 주최측인 조선비즈 담당자로부터 "수도산와이너리 와인이 한국와인 부문에서 최고상(Best of 2021)을 수상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십종이 출품한 한국와인들 중 최고점을 받은 것이다.

특히 올해는 레드와인 부문 경쟁이 치열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와인 심사를 맡았던 최정욱와인연구소의 최정욱 소장은 "매해 한국와인의 품질 향상이 눈부실 정도인데, 특히 올해는 그동안 다소 아쉬웠던 레드와인 부문에서 좋은 품질의 와인들이 많이 나왔다"며 "빈티지 차이와 지리적 떼루아의 차이, 미묘하고 섬세한 디테일들을 느낄 수 있어 와인들의 개성이 점점 도드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 대표가 출품한 와인은 2017년 빈티지(와인 양조 원료로 쓰인 포도 수확연도)의 ‘크라테 세미 스위트’다. 100% 산머루로 만든 레드와인이지만, 신맛과 단맛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바디감은 묵직해 심사위원들로부터 최고평가를 받았다. 이름은 ‘세미 스위트’이지만 ‘미디엄 드라이'란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산미, 바디감 등이 훌륭했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3길 29에 자리한 수도산와이너리 지대는 해발 500m. 평지인 김천시내와 비교해 기온이 5도 정도 낮다. 일교차도 커서 과일의 당분이 많다. 양조용 포도가 자라기 위한 좋은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다.

머루나무에 새싹이 아직 나오기도 전에 둘러본 머루밭은 황량했다. 아직 열매를 달지 않은 머루는 여느 포도나무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산머루는 포도열매 3분의 1 크기로 작은 편이지만, 칼슘 등 우리 몸에 좋은 각종 무기질을 훨씬 많이 함유하고 있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가 “산머루로 만든 크라테 와인은 장기숙성이 가능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박순욱 기자

특이한 점은 밭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죄다 투명비닐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 외국 와이너리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백 대표는 "여름철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추려고 비닐을 씌웠다"고 말했다. 비를 많이 맞은 과실은 수분이 많아져 당분 함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햇빛은 최대한 받으려고 투명 비닐을 사용했다. ‘여름철 강우량이 많아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부적합하다’는 한국 기후조건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당도 높은 좋은 와인을 만드려는 그의 노력은 나무에 비닐우산을 씌우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9월초면 다 익는 산머루를 곧바로 따지 않고 10월 중순까지 내버려두었다가 서리를 한두차례 맞힌 뒤에야 수확한다. 이러면 산머루 열매의 수분이 증발해 열매가 쭈글쭈글해진다. 수분이 줄어드는만큼 전체 생산량은 줄지만 열매 자체의 당도는 훨씬 높아진다. 한국와인의 ‘치명적 단점’인 보당(설탕 첨가)을 가급적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자연건조를 통해 머루 열매를 농축시켜 당도를 높이는 것은 이탈리아 ‘아마로네 와인’과 유사하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최정욱 소장의 코멘트다.

"당분이 낮은(알코올 도수가 낮은) 한국와인의 단점을 이탈리아의 아마로네 와인을 만드는 아파시멘토 방식으로 극복했다. 아파시멘토는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포도를 수확해 건조시켰다가 당분을 극대화시켜 만드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수도산와이너리의 크라테는 늦수확의 방식으로 포도를 건조해 수분을 줄여 당분을 더 늘리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이렇게 되면 가당 없이도 충분히 높은 알코올을 발효해 낼 수 있고, 머루의 진한 특성이 더 극대화 되기도 한다. 크라테 와인처럼 우리나라에서 아파시멘토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것은 기후와 떼루아의 단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와인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인 최 소장의 크라테 와인에 대한 극찬이다.

산머루를 심은지 20년이 넘었지만, 와인에 관한 한 여전히 그는 ‘교육생’이다. 스페인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김천시로부터 템프라니요, 가르나차, 모나스트렐을 비롯해 스페인 포도품종을 여럿 지원받아 시험재배하고 있다. 백 대표는 "스페인 레드와인 품종으로 만든 와인 일부를 산머루 와인에 넣어(블렌딩) 바디감이 다소 약한 점을 보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복서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여전히 눈빛이 매서운 백승현 대표를 만나, 포도가 아닌 한국토종 품종인 산머루로 한국 최고의 와인을 만든 스토리를 들었다. 그는 "안방(국내와인시장)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후에는 와인 본고장인 프랑스에 크라테 와인을 수출하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국와인 챔피언'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와인'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와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만큼, 이제부터 시작"이라고도 했다.

-이번에 최고상을 받은 크라테 세미 스위트는 어떤 와인인가?

"세미 스위트는 다른 말로 하면 미디엄 드라이다. 단맛을 최대한 줄인 ‘크라테 드라이'보다는 약간 단맛이 남아 있다. 최정욱 소장을 비롯해 소믈리에들은 ‘세미 스위트’ 대신 ‘미디엄 드라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산머루 100%로 만든 2017년산 한국와인이다. 처음에는 흙향, 풀향이 난다. 숙성(3년간 오크통 숙성)된 와인인 만큼 코르크 오픈 후 1~2시간 후에 마시면 스파이시한 향, 블랙자두, 장미향 등이 올라온다. 목넘김 등 균형감이 아주 좋고, 빈티지에 따라 맛에 차이가 있는데 2017년 빈티지 와인이 아주 좋다."

-해마다 와인 맛에 차이가 있는가?

"해마다 일조량, 강우량이 달라 와인 원료인 산머루 작황이 달라지는 만큼 와인 맛도 해마다 차이가 있다. 2013, 2014년 빈티지는 그저 그런 편이었고, 내가 만든 와인 중에서는 2015년 빈티지가 최고 좋았다.

그해 날씨가 안좋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술이 안나온다. 빈티지는 결국 자연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양조기술로 한해 기후 조건을 극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2015년 드라이 와인은 아직도 어리다(young). 2015년 세미 스위트 경우는 에어링(airing, 병입 전 오크통 숙성 단계에서 오크통을 저어주는 과정)을 한다. 이럴 경우 공기 접촉이 활발해져 와인이 빨리 깨고 맛이 부드러워지더라."

-다른 와인(크라테 드라이, 로제, 화이트)들도 소개해달라.

수도산와이너리 대표 와인들. 왼쪽부터 크라테 세미 스위트, 크라테 드라이, 크라테 화이트, 크라테 로제. /수도산와이너리 제공

"크라테 드라이는 세미 스위트와 마찬가지로 100% 산머루로 만든다. 로제는 직접 개발한 포도품종인데, 돌연변이 레드와인 품종으로 만든다. 포도껍질이 두꺼워 산미, 바디감도 좋은데 단지 색상이 옅어서 이걸 ‘드라이 와인'으로 쓰기는 좀 그렇고 해서 ‘로제’로 만들었다. 로제는 계속 공부하는 중이다. ‘화이트’는 일본의 화이트와인 레드레네 스쿨 포도품종(60~70%), 김천의 자랑인 샤인머스켓(20~30%), 독일의 리슬링 품종(10%)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이건 디저트와인으로 맛이 달다."

-산머루 100%로 만드는 ‘크라테 드라이’와 ‘크라테 세미 스위트’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발효 기간에 차이가 있어, 결과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약간 다르다. 완전 발효를 시키면 ‘드라이’가 되고, 당분을 조금 남기기 위해 발효를 중지시켜 만드는 게 ‘세미 스위트'다. 드라이는 알코올 도수가 12도, 세미 스위트는 11.5도다. 세미 스위트는 발효가 5~7일, 드라이는 10일 정도 걸린다."

-와이너리 규모는?

"포도밭은 5000평 정도다. 이중 산머루 밭이 60%, 나머지는 로제와 화이트 만드는 포도밭이다. 일부 밭에는 템프라니요, 모나스트렐 같은 스페인 포도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지금은 크라테 드라이를 100% 산머루로 만들지만, 나중에는 시험 재배 중인 스페인 레드와인 품종 일부를 섞을 작정이다. 그러면 탄닌, 바디감이 더 좋아질 것이다."

-와이너리 지형은?

"해발고도는 500m다. 해발 1300m 수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과 이어져 있는 가야산 자락이기도 하다. 머루밭 앞쪽이 동쪽이라, 해가 가장 먼저 뜬다. 토양이 석회암층이라 암반이 많아 양조용 포도를 키우기에 적합하다. 물이 부족해 뿌리가 땅밑 깊은 곳까지 자라기 때문에 흙속의 양분 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배수도 잘된다.

수도산와이너리는 2020년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홍보대사 홍신애(요리연구가), 아비가일(우루과이 출신 방송인)씨가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있다, 맨 오른쪽은 백승현 대표 부인인 이석순씨./수도산와이너리 제공

2001년부터 이곳에 머루를 키웠는데, 그전에는 부모님이 담배, 약초를 재배했다. 내가 귀농하면서 산머루밭으로 바꾸었다. 밭 토양을 살리는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땅이 건강해지니까 작물이 제대로 살아났다."

-프로복서 등 다양한 이력이 있다.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고교 시절 아마추어 복싱을 시작했다. 제대 후 프로로 입문했다. 당시는 ‘헝거리 복서'라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술, 담배를 하니까 몸도 이전만 못하고 사람이 나태해지더라. 결국 보안업체 경호원으로 취직했다. 3년6개월 근무했다. 외환위기 이후 고향인 김천으로 돌아왔다. 2년 정도 뭐할까 방황하다가 부모님 밭에 머루를 심기 시작했다."

-산머루를 심은 이유는?

"이곳 주변에는 산머루, 오미자, 다래 등이 지천으로 자라는 곳이다. 2001년에 귀농했다. 부모님께 ‘머루를 재배해 술을 만들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본격적인 머루 재배는 2001년부터다. 2004년부터 와인공부를 시작했다. 와인은 2006년산이 처음이다.

주류제조 면허는 2007년에 땄다. 경북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와인 양조를 배웠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로 구대륙와인 양조를 주로 배웠다. 그래서 가당(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도 좋은 와인을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탈리아 아마로네 공법을 벤치마킹하게 됐다."

-‘자연의 링에서 한국와인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는데?

"사실 사회에서는 성공을 못했다. 고향에서만큼은 한번 내가 직접 농사지은 원료로 제대로 된 와인을 빚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고향의 흙은 거짓말을 안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다."

산포도라고 불리는 산머루는 포도보다 열매 크기는 작지만, 당도와 산도가 높은 품종이다. 포도에 비해 칼슘, 인, 철분 등 각종 무기질 성분이 2~10배 많다. 특히 항산화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안토시아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게 산머루다.

산머루는 포도 열매보다 작지만 칼슘을 비롯한 몸에 좋은 각종 무기질들이 훨씬 많다. /수도산와이너리 제공

-산머루를 와인의 주재료로 삼은 이유는?

"산머루는 해발 300m 이상 돼야 잘 자란다. 이곳 와이너리는 500m다. 산이 없는 김천 시내에서 자란 산머루로 와인을 담아보니까 좋은 술이 안나오더라.

산머루는 산포도라 부르는 토종 품종이다. 아시아종(비티스 아무렌 시스 계통)인데, 조선, 고려시대에도 산머루가 재배됐다는 기록이 있다. 산머루로 레드와인을 빚으면 색상이 일반 포도와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색이 워낙 진해서 옛날에는 산머루를 염색 재료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가 숙성 오크통에서 시음을 위해 와인을 뽑고 있다. 크라테 와인은 최소 3년을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다. /박순욱 기자

농촌진흥청에서 성분검사를 해보니 모든 성분이 산머루가 포도보다 7~10배 많은 걸로 조사됐다. 흔한 식용 포도품종으로 와인 재료로도 쓰이는 캠벨, 거봉, MBA 등은 우리 토종 품종이 아니다. 캠벨은 미국종이고, MBA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또, 이들 포도는 생과용이다. 와인을 만들기에는 당도가 낮은 편이다."

-산머루 역시 양조용으로는 당분이 모자랄텐데.

"산머루도 한 그루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당도가 낮아진다. 그래서 당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생산량을 많이 줄였다. 응축된 포도(산머루)를 생산하기 위해 면적당 나무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한그루 당 수확량도 2kg로 제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정도로는 충분한 당도가 보장되지 않아 수확기에 머루를 따지 않고, 서리가 한두차례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수분이 빠져 열매가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을 한다. 그래서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이라고도 불리지만, 크라테는 열매 수확 자체를 미루고 나무에 매단 채로 자연건조를 시키는 반면, 열매 수확 후에 건조시키는 아마로네 와인과는 다르다. 거봉, 캠벨로 와인을 만들려면 보당(설탕 추가)을 많이 해야 한다.

산머루는 여러가지 좋은 성분이 많고 장기 숙성도 가능한 품종이다. 2010년 빈티지 맛을 본 소믈리에들이 극찬을 했다. 산머루 와인을 외국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도 전망이 밝다고 본다."

-산머루는 신맛이 강한데, 어떻게 극복했나?

"산머루, 오미자 등이 신맛이 아주 강하다. 이 지역에서 잘 자란다. 기본적으로 신맛이 강하지만 수확시기를 달리 해서 발효를 통해 신맛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가령, 설익은 열매를 따서 발효를 했을 때, 중간쯤 익었을 때, 완전히 익었을 때, 그보다 수확을 늦춰 자연농축시켰을 때 각각 발효를 하고 맛을 보니, 신맛의 정도가 다 달랐다. 산도가 높은 산머루도 농축을 시켜(최대한 수확시기를 늦춰) 발효를 하니, 신맛이 훨씬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게됐다.

수도산와이너리 크라테 와인은 장기숙성이 가능하다. 사진은 하얀 곰팡이가 곱게 핀 크라테 와인들. /수도산와이너리 제공

9월 초면 산머루가 다 익는데, 이때 바로 수확하지 않고 한달 이상 나무에 그냥 매달아둔다. 그러면 수분은 많이 빠져나간다. 결국 산머루의 신맛을 줄이는 것과 당도를 높이는 것은 수확 시기를 늦춰 해결했다. 열매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원료는 다소 줄어들지만, 그만큼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산머루는 껍질이 얇아서 탄닌이 적고 바디감도 약하다.

"바디감을 높이기 위해 산머루 줄기를 다 제거하지 않고 일부 남겨 발효를 같이 시킨다. 일반적으론 줄기를 제거하고 열매만 압축한 뒤 발효과정을 거친다. 또, 숙성과정에서 오크통을 쓰면 바디감이 다소 올라간다. 오크통 3년 숙성을 한 뒤 병입하는 이유가 바디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1년 숙성한 것과 3년 숙성한 것과는 바디감에 차이가 있다. 오크통도 프랑스산, 포르투갈산, 미국산 다 써봤는데 미국산이 가장 나았다. 3년 이상 숙성을 해야 산미도 부드러워지고 입안 바디감도 묵직해지더라."

-산머루 외의 재료로 와인을 만들고 있거나 계획인 와인은?

"김천시를 통해 7종의 외래 포도품종을 받았다. 레드와인 품종으로 템프라니요, 가르나차, 모나스트렐이 있고 화이트 품종으로 아이렌, 마카베오가 있다. 독일산 리슬링도 있다. 리슬링은 크라테 화이트에 일부 들어간다.

산머루로 레드와인을 만들다보니, 레드와인용 품종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레드와인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과 산머루 와인을 블렌딩해서 타닌이나, 바디감 등 산머루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작년에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된 후 달라진 점은?

"코로나 시국이라 와이너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지 않았지만 온라인 판매는 50% 가량 늘었다. 전체 판매 중 온라인 비중이 80% 이상이다.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 후 포토존도 설치했고, 지금 마무리 중인 와인바(와인시음겸 판매장)도 조만간 오픈할 것이다. 주중에는 농사를 짓고, 금토일에는 와인바에서 손님을 맞을 작정이다."

-유기농 와이너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조치는?

"토양검사를 일년마다 한다. 산머루 농사 전에 했던 담배, 약초 재배 시에는 화학약품을 많이 썼다. 무농약으로 산머루를 재배했지만, 토양에서 중금속이 배출됐다. 머루 심기 전, 담배 재배 때 쓴 약품 때문이었다. 중금속을 제거하고 결과적으로 지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이미 머루 나무는 심어져 있는 상태였다.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지력 회복 방법이 호밀 재배였다. 머루 나무 사이사이에 5년 동안 호밀을 키웠다. 다 자란 호밀은 내다 팔지 않고, 계속 거름으로 활용했다.

3년간 호밀을 심었더니 땅도 부드러워지고 지렁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토양검사도 아주 양호하게 나왔다. 유기물 수치도 적정수준을 회복했다. 머루밭에 따로 물도 주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전부다. 자연 그대로 놔두면 말라 죽는 나무도 있고, 살아남은 나무는 뿌리가 땅 속 깊숙히 내려가더라.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들은 가뭄이 들더라도 마르지 않았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강원도에서도 산머루가 잘 자라지만, 이곳 석회암층에서 자라는 산머루가 양조용으로는 가장 적합하다고 자부한다."

-수도산 해발 500m지점에 와이너리가 있는 장점은?

"평지인 김천 시내와 비교해서 5도 정도 온도가 낮다. 낮밤 차이도 크다. 한여름 밤에, 김천 시내에서는 더워서 못자지만, 이곳은 이불 없이는 추워서 못잔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난다. 낮에는 충분한 햇빛을 받고, 또 밤에는 서늘한 공기가 식혀주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열매의 당도가 높아진다."

-당도를 높이기 위한 포도(산머루) 응축 조치는?

"처음에는 머루 나무 간격을 10m로 했다. 뛰엄뛰엄 심어야 햇빛을 잘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품질을 우선시했다. 이럴 경우 한 나무에 열매를 30kg도 수확할 수 있다. 그런데, 비료 등이 엄청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정착된 것이 나무 간격 2~2.5m로 했다. 산머루 한 그루에 와인 한병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술을 만들고 있다. 일년에 3000~4000병 생산한다. 전체 나무 그루 수와 비슷하다."

-와인 브랜드 크라테(Krate)는 어떤 의미?

"2007년 주류제조면허를 따면서 와인 브랜드를 ‘크라테(Krate)’로 정했다. 크라테는 화산분화구(Crater), 한국 술(K)을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이곳 지형이 분화구를 닮았다. 산머루가 토착 품종이라 한국술임을 강조했다."

-한국와인 중 드물게 빈티지 와인을 생산하는 이유는? 가장 오랜 빈티지는?

"처음부터 빈티지 개념(양조에 쓰인 포도를 수확한 연도를 표시하는 것)을 도입했다. 연도마다 라벨도 조금 차이가 있다. 가장 오랜 빈티지는 2006년이다. 3병 갖고 있다. 어느 정도 오래되면서도 물량을 많이 확보해놓은 빈티지는 2010년이다. 2011, 2012년은 작황이 좋지 않아 많이 만들지 않았고, 아예 판매를 하지 않았다. 소장용으로 갖고 있다. 매년 와인을 만들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은 팔지 않고 가지고만 있다.

온라인에서는 2015년 빈티지 와인을 10만원선에 판매하고 있다. 소믈리에들은 2010년산도 품질이 좋다고 하지만 수량이 적어, 소장만 하고 있다. 품질 좋은 와인은 장기숙성이 가능하다. 10년 이상된 와인도 아직 생생하다."

-산머루는 해마다 작황(생산량, 품질)이 어느 정도 다른가?

"날씨에 따라 머루 품질이 매년 다를 수밖에 없다. 날씨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10월초에는 첫서리가 온다. 두번째 서리까지 맞힌 뒤인 10월 10일 이후에 수확을 한다. 서리를 맞으면 열매가 응축이 된다. 수확 전에 당도를 점검해서, 당도가 20 브릭스 넘어가야 수확을 한다.

수확할 때 가장 바람직한 당도는 22브릭스인데, 수확 시기를 늦추어도 22브릭스까지 안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는 부득이 보당을 한다. 보당을 하면 보당 표시(설탕)을 한다.

2015년 빈티지는 보당을 전혀 하지 않았다. 2017년 빈티지 경우는 5% 정도 보당했다. 보당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알코올 도수 13도는 보당하지 않고는 정말 어렵다. 냉동응축을 하면 알코올 도수는 올라가는데 제맛이 안나서 포기했다. 자연건조(나무에서 산머루를 따지 않은 상태서 수분을 자연스럽게 빼면서 당도를 높이는 방법)을 이용, 최대한 당도를 높이고 있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가 와인 색상을 살펴보고 있다. 산머루 100%로 만든 크라테 와인은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에 비해 색상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수도산와이너리 제공

-3년 숙성을 거쳐 병입하는 이유는?

"숙성을 오래할수록 술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3년 오크통 숙성 후 맛을 보고나서 문제 없으면 병입하지만, 다소 부족하면 병입 시기를 더 늦춘다. 병입하고도 최소 6개월은 지나야 시장에 내보낸다. 2017년 빈티지 크라테 드라이는 올해 2월 17일에 병입했다.

드라이는 세미 스위트보다 병입 시기를 늦췄다. 2016년 빈티지가 워낙 안좋아 2017년 드라이는 많이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곤혹스럽게도, 소비자들이 세미 스위트보다 드라이를 주문하고 있다. 세미 스위트는 생산량도 많고, 이번에 대한민국주류대상 최고상을 받은 제품인데도, 적게 만든 드라이가 더 잘 팔리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드라이를 덜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달지 않은 드라이 제품을 더 선호한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드라이 경우는 코르크 마개를 연 후 최소한 2시간은 에어레이션(aeration, 와인을 마시기 전에 공기 중에 노출시켜 숨쉬게 하는 과정)을 해줘야 향이 제대로 우러난다."

-한국의 아마로네 와인이라 불린다.

"머루는 워낙 신맛이 강하니까 신맛을 부드럽게 할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해법은 농축이었다. 수확철을 훌쩍 넘긴 농익은 열매는 그냥 먹어도 신맛이 훨씬 부드러웠다. 보통 머루 당도는 17~18 브릭스(알코올발효를 할 경우 8~9도 정도) 정도다. 자연농축을 하면 22브릭스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한해는 몇그루 머루를 따지 않고 눈 올때까지 기다렸다. 열매는 쭈글쭈글해졌는데, 맛을 보니 완전 꿀이었다. 신맛도 전혀 나지 않았다. ‘아, 이렇게 수확 시기를 늦추면 당도는 올라가고, 신맛은 부드러워지는구나’ 깨달았다. 한가지 단점은 머루 열매 안의 씨였다. 수분이 빠져 열매는 쪼그라 들었는데 씨는 그대로 있어, 열매를 까면 씨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씨에서 쓴맛이 많이 났다. 하지만, 씨앗을 제거하지 않고, 과육과 함께 발효시킨다.

세미 스위트는 발효를 5~7일, 드라이는 10일 정도 한다. 드라이가 쓴맛이 더 강한데, 씨앗 때문이었다. 쓴맛은 다소 강해도 신맛의 부드러움, 묵직한 바디감은 드라이가 더 좋았다."

-보당은 어느 정도?

"수확 당시 22브릭스에 못미칠 경우에 5~10% 설탕을 첨가한다."

-숙성실에는 오크통과 스틸통이 같이 있던데?

"스틸(스테인레스 숙성탱크)탱크, 오크통 어디에 숙성하느냐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진다. 스틸 숙성에는 아로마 향(와인 원료인 포도가 갖고 있는 향)밖에 안난다. 오크통은 부케(오크통 숙성에서 우러나는 향)와 아로마가 같이 나오니까 훨씬 향이 풍부하다.

그래서 오크통에서 3년 정도 숙성을 하고나서 안정화를 위해 스틸통으로 옮겨 3개월 정도 추가숙성을 한다. 이후에 병입하고 6개월 안정화 단계(병입숙성)를 거쳐 출시한다. 가장 최근에 출시한 것이 2017년 빈티지다. 병입 날짜가 2020년 6월 17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안방(국내 와인시장)에서 먼저 제품력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공부를 계속해서 좀더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 그런 후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산머루와인 크라테를 역수출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파리의 심판(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회. 예상과 거꾸로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같은 와인 블라인딩 테이스팅 행사를 해보고 싶다. 같은 빈티지의 프랑

스 고급와인과 산머루와인을 당당히 겨뤄보고 싶다. 이렇게만 된다면, 프랑스 수출도 어렵지 않을 걸로 본다.

하지만 국내에서 호평을 받는데 우선이다. 와인 만든지 20년이 다돼가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배울게 더 많다. 초심 잃지 말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갈 것이다. 와인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해나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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