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퍼석한 새우깡 맛, 동의보감 약재…식용 곤충 표준화 연구하는 이 곳

지상민 농업과학원 연구사가 갈색거저리 유충(밀웜)을 살펴보고 있다./전주=이민아 기자
지상민 농업과학원 연구사가 갈색거저리 유충(밀웜)을 살펴보고 있다./전주=이민아 기자

길이는 검지 손가락 한마디를 조금 넘고, 두께는 휴대전화 충전선만한 튀김을 눈을 질끈 감고 씹었다. 자그마한 다리들이 마디마다 달려있는 이 간식은 밀웜(갈색거저리의 유충, 별칭 ‘고소애’)을 깨끗하게 소독해 볶은 것이다.

과자를 씹는 느낌이 났다. 새우깡, 장어뼈 튀김처럼 고소한 풍미가 느껴졌다. ‘곤충인줄 몰랐다면 더욱 기꺼이 먹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 곤충사육동에서 키우는 밀웜 볶음의 맛이다. 밀웜은 단백질이 풍부해 미래 식량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일 익산역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려 전주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을 찾았다. 농업과학원 중에서도 밀웜을 비롯해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등 식용, 반려 곤충을 육종해 산업 현장에서 곤충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는 곤충사육동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약 17만마리의 곤충이 있다. 지난달 기준 흰점박이꽃무지는 2000마리가, 갈색거저리는 15만4500마리가 이곳에서 육종된다.

갈색거저리(밀웜) 볶음./농촌진흥청
갈색거저리(밀웜) 볶음./농촌진흥청

◇육종 실험실엔 꿈틀대는 애벌레들이 한가득

이곳에는 밀웜과 밀웜의 성체인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슈퍼밀웜, 슈퍼밀웜의 성체인 아메리카 왕거저리 등의 식용 곤충이 자라고 있다.

가로 40㎝, 세로 30㎝, 깊이 20㎝ 정도 되는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에 흙,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 등을 담아 만든 곤충의 보금자리 상자가 연구실 벽을 둘러싼 선반마다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박스에는 곤충들이 태어난 일자가 붙어있었다. 언제 부화했는지를 파악해 성체가 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지상민 농과원 곤충양잠산업과 연구사는 두툼한 손으로 흙을 뒤적이며 태어난지 9~10주된 밀웜과 굼벵이를 찾아냈다.

그는 거리낌없이 오동통한 굼벵이와 가느다란 밀웜을 각각 손에 얹어 이들이 꿈틀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농과원 연구사들은 이곳에서 식용 곤충의 표준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번데기가 되는 기간, 곤충의 무게 등을 곤충 사육 농가마다 비슷하게 길러낼 수 있도록 육종 실험을 하는 것이다.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인 굼벵이./전주=이민아 기자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인 굼벵이./전주=이민아 기자

곤충을 기르는 농가마다 곤충이 자라는 속도나 크기가 다른데, 이는 대기업의 식용 곤충 산업 진출에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도 곤충을 원료로 식의약품을 만들어보려 해도 아직 표준화가 덜 돼 제품 대량 생산을 추진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지 연구사는 “갈색거저리, 흰점박이꽃무지 등 식용 곤충들이 번데기가 되는 기간, 무게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빠르게 자라게 할지, 크기를 키울 수 있을지 등의 육종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풍부한 단백질, 암환자에게도 효과 봤다

고소한 맛이 나는 밀웜은 지난 2016년 일반식품 원료로 등록됐다. 영양성분은 단백질 51%, 지방30%, 탄수화물 14%로 단백질 함량이 높다. 지방 함량 중 75%가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뤄져 있으며, 철분, 인 등 무기질도 풍부하다.

밀웜은 암환자 대상 식이 요법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농진청은 최근 박준성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연구팀과 함께 항암 치료 중인 췌담도암 환자와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밀웜을 8주간 매일 섭취하도록 한 결과, 이를 복용한 암환자의 영양 지표가 개선된 것을 세계 최초로 확인하기도 했다.

갈색거저리 유충의 영양성분./농진청
갈색거저리 유충의 영양성분./농진청

농과원은 지난 2013년 이후 곤충의 식량화를 꾸준하게 연구하고 있다. 꾸준한 육종 연구를 이어온 끝에, 세계은행(WB)과 공동으로 지난 2020년부터 아프리카처럼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 곤충을 생산하고 식량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를 할 수 있을만큼 기술력이 올라왔다.

건강식이라는 인식에 힘입어 곤충 산업의 규모는 지속 성장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2021 곤충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곤충 판매액은 446억원으로 2020년 판매액인 414억원에 비해 7.7% 증가했다.

지 연구사는 “동의보감에도 실린 흰점박이꽃무지는 간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고, 어혈을 풀어줘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며 “3~4일 똥을 빼고 말려서 먹으며, 농가에서는 이를 갈아서 환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똥은 퇴비로 쓴다”고 강조했다.

=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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