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으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원전으로 수소를 생산하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하재주 원자력학회장)
6일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략 포럼’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무(無)탄소 에너지원인 태양광·풍력과 원전, 수소를 모두 활용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재주 원자력학회장은 개회사에서 "기후위기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인 신재생 에너지, 원전, 수소는 모두 단점을 보유한다"며 "원전의 위험성,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수소의 까다로운 생산·수송·저장이라는 단점을 극복하면서 각 에너지원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경제성도 갖춘 에너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호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한국에너지학회 수석부회장)는 "2050년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은 2018년과 비교해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시설을 강제로 닫지 않는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태양광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난 10년간 비용이 80% 가까이 급격히 절감된 영향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재생에너지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보급과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비해 기존 인프라 준비가 미흡하다"며 "재생에너지는 생산하는 곳에서 바로 소비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100% 계통에 물리는 형태"라고 했다.
박 교수는 재생에너지 설비공급이 빠른 제주도는 이미 발전량 증가로 출력제약(curtailment)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출력제약은 낭비 요소가 많은데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대응에서 원전의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원자력 증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원전을 2030년까지 지금의 약 2배, 2050년이면 약 6배까지 늘려야 기후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이라는 기후대응 목표를 달성하려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의 도움 없이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해야 하는데, 원전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지금은 하루 4시간 돌아가는 태양광을 대체하려면 나머지 20시간을 가스에 의존해야 한다"며 "그러나 가스를 보조발전원으로 자주 사용하게 되면 출력변동으로 인해 효율이 석탄발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질 뿐 아니라 메탄가스도 배출된다"고 했다. 보조발전으로서 가스는 환경성은 물론 경제성도 나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한 운전이 가능한 무탄소 발전원인 원전을 국가 에너지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원전은 가스복합발전과 비교해 출력 조절이 쉽고 운전 중 탄소배출량도 제로(0)"라며 "대한민국의 무탄소 미래를 위해 원전을 보조발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자율운전이 가능한 미래형 원자로와 분산전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제시했다.
또 원전이 제 역할을 하려면 안정성이 확인된 원전의 계속운전을 허용하고,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해 20년간 계속운전하면 발전량은 15조7000억kWh(킬로와트시)로 늘고 한국전력 (23,650원 ▼ 300 -1.25%)의 매출은 같은 기간 600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의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 발전량은 10조kWh에 머물고 한전은 600조원을 LNG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재앙(disaster)과 같았습니다. 환경은 물론이고, 한국의 국가안보와 경제를 위태롭게 한 결정이었습니다."
마이클 셸런버거 '환경 진보(Environmental Progress)' 창립자 겸 대표는 지난 20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원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석탄·가스를 전력원으로 쓰면서 대기오염이 심화하고 비용만 증가했다"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원전 같은 에너지원이 없으면 노예나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셸렌버거 대표는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2017년에 방한했다. 미국 원자력·기후학 과학자 13인과 공동 서명한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미국 석학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셸런버거 대표는 원전 폐쇄 반대 운동을 편 환경운동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2014년 판권을 사 국내에 배급한 다큐멘터리 '판도라의 약속'에 출연해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미국 뉴욕주와 일리노이주의 원전 폐쇄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8년에는 시사 주간지 타임으로부터 '환경 영웅'으로 뽑혔다.
한국을 다시 찾은 셸런버거 대표는 국내 원자력 업계에 무기력감이 팽배하다고 했다. 탈원전 정책이 이미 진행 중이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원자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부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며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원전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탈원전으로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위험하다고 했다. 이 점에 대해 특히 힘주어 말한 듯한 느낌인데.
"탈원전은 한국의 에너지 자립에 최악의 결정이었다. 호르무즈해협 유조선 피격 사건만 봐도 세계적인 분쟁이 증가한다면 석탄과 천연가스 수입에 차질이 빚어진다. 원전 만이 에너지 자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에너지안보를 희생한 대가는 전력 비용 상승과 대기오염 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악영향이 있었나.
"한국전력의 올해 1분기 손실액은 천문학적이었고, 한국수력원자력은 수조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UAE 원전 유지보수 사업 독점권을 놓쳤다. 그릇된 공포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다. 한국은 부유해지면서 원전이 경제에 기여한 점을 잊었다. 탈원전으로 한국이 부담해야할 추가적인 비용은 2000억~4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34만명에게 각각 2만9000달러의 월급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돈이다."
―한국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을 10km 단위의 블록으로 쪼개면, 1000개 구역 중 8개 구역만 대규모 태양광 발전이 가능하다. 300만 가구를 위한 발전량을 얻기 위해 원전은 축구장 크기의 부지만을 필요로 하는데, 태양광과 풍력은 각각 이보다 478배, 625배의 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한계 때문에 지난 2년 사이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 비중은 각각 0.7%포인트, 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에너지 정책은 투자에 따른 환원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우리가 투자한 만큼 돌려주지 않는다."
"환경적인 악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태양광 발전소 폐기물의 독극물은 원자로보다 350배나 많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 필요한 광물을 캐려면 부산물도 그만큼 나온다. 핵 폐기물은 에너지 부산물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다. 스위스 원자로에서 나온 45년치 폐기물은 축구장 크기 창고에 모두 보관이 가능하다."
―한국 원전 산업은 탈원전으로 존폐기로에 섰다. 세계 원전 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세계 원자력 시장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은 프랑스와 더불어 '서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이한 원전 건설국이다. 한국이 빠지게 되면 러시아와 중국의 지배적인 위치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원전 산업에서는 경험 축적이 기술 발전으로 직결된다. 해외 원전 업계는 동일한 원자로를 지으면서 비용과 공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원전 산업 경쟁력을 쌓은 한국을 배우려고 한다. 한수원의 원자로인 'APR1400'의 경우다. "
―한국 원전 산업이 탈원전이라는 산을 넘으려면 어찌해야할까.
"우선 원전 산업은 사고가 없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약속부터 거둬야 한다. 이는 엔지니어들의 과도한 자신감일 뿐, 우린 이미 두 차례나 최악의 사고를 겪었다. 사고는 분명 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 파악한 '사실'에 대해서만 정확하게 알리면 된다. 원전 사고로 사망한 이들 대부분의 사인은 방사능 피폭 등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고에 뒤이은 '패닉'과 공포심으로 숨졌다."
―패닉으로 사망했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
"후쿠시마 사고를 예로 들겠다. 원자로 냉각을 위해 냉각수를 충분히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 총리와 도쿄전력이 이와 관련한 지시를 뒤집었다. 이 과정에서 방사능 환기도 지연했다. 지역 주민들 대피가 이유였다. 그러나 환기가 늦어지면서 폭발로 이어졌다.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했을 시기에 대규모 대피를 우선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본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노인들을 대피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으로 2000명이 숨졌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한국 원전 업계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탈원전 정책의 유일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안주하기만 했던 원전 업계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최근에서야 대중들이 원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쿠시마 사고, 경주 지진을 거치면서 생긴 막연한 공포가 반핵을 지지하는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원전 업계에는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반대하는 의견을 감정적인 것으로 몰아세우며 기술적인 해명으로만 일관했다.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고 대중의 우려를 방치했다."
―원전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원전 산업이 차가운 기계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한다. 사람들이 병원 엑스레이나 기기들에 몸을 맡기는 것은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원전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로 단속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한수원의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합세해서 국민들과 관계를 맺는 데 나서야 한다."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에 원전을 검색하면 죽음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이미지가 가득하다. 신재생 에너지의 경우, 아름다운 사진들 일색이다. 원전산업은 사실이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에서만 300명이 교통사고로 죽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대기오염 때문에 1년에 700만명이 세상을 뜬다. 유독 원전에 대해서만 공포를 조장하는 세력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국 원전 업계에 고무적인 부분도 있었나.
"원자력 전공 대학생들이 연합해 탈원전에 맞서고 있다. 대만이 원전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젊은이들의 활동이 있었던 덕분이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원전 업계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기력감이다.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선배들의 실패를 학생들이 만회하기 위해 나선 셈이다. 이들에 감명 받아 즉석에서 1000달러 기부를 결정했다.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양심적 의무다. 원자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부로부터 원전을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