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EU, 비슷한 시기 일제히 표준 전략 발표
첨단산업 기술 패권 잡기 위한 표준 선점 경쟁 치열
韓정부도 ‘첨단산업 국가표준 전략’ 곧 발표
“미래 기술 주도권 잡기 위해선 표준 적극 활용해야”
[편집자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녹색 전환, 경제 안보를 내세운 공급망 재구축 등 세계 경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선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들 전장의 최전선에 ‘표준’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호환성을 목표로 만들어진 ‘표준’이 경쟁상대의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표준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기술 우위를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술 대한민국의 첨단산업 표준전략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조선비즈는 국가기술표준원, 한국표준협회와 함께 한국의 표준 현황을 점검하고, 신전략을 모색한다.
지난해 5월 미국 정부는 기술 표준 주도권 확보가 필요한 통신, 반도체, AI 등 주요 8대 분야에 대한 ‘핵심 신기술 국가표준 전략(US Government National Standards Strategy for Critical and Emerging Technologies)’을 발표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도해 발표한 미국의 국가표준 전략에는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가 대거 반영됐다. 백악관은 국가표준 전략에서 “중국이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중국의 표준에 대한 타국의 지지를 유도 또는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은 동맹국 및 파트너와 함께 기술적 장점과 공정한 절차를 기반으로 국제표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미국의 표준정책 발표 3개월 후인 8월, 중국은 신산업 표준화 방안(China Standards 2035)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8대 신흥산업과 9대 미래산업 분야의 표준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은 같은 해 6월 범부처 과학기술 및 혁신 정책을 구체화한 통합혁신전략 추진 방안을 수립했다. 양자기술, 통신, 반도체 등 첨단 분야 R&D 과정에서 국제표준화 방안을 제시하도록 해 표준을 통한 기술의 상용화를 촉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의 표준 전략은 그동안 ‘표준 수용 국가(rule taker)’의 위치에서 ‘표준 개발국가(rule maker)’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EU는 이보다 앞선 2022년 3월 ‘EU 표준화 전략’을 수립하고, 첨단기술 분야의 전략적 표준화 우선순위를 선정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시기에 표준 전략을 발표한 까닭은 무엇일까.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은 14일 “R&D를 통해 확보한 자국의 기술 경쟁력을 국제 표준으로 삼아 기술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라며 “표준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반도체 패권 경쟁, AI 국제 표준 경쟁으로 이어져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세상의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2017년 디지털 기술 및 서비스 시장의 규모는 1조달러 수준에 그쳤으나, 2026년에는 3조4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AI 산업에 대한 표준 수립이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가 가입자 100만명을 모으는 데 150일이 걸렸다. 인스타그램은 75일이 걸렸다. 하지만 챗GPT는 고작 5일이 걸렸다”라며 “이러한 급성장은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과 함께 AI 개발을 위한 표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3대 국제표준화기구도 ‘표준이 책임감 있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것’이라며 AI에 대한 표준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AI는 향후 가전, 모바일, 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선 제품에 내장돼 클라우드 없이 작동하는 ‘온 디바이스 AI’가 주목받고 있다. 이를 위한 AI 반도체의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I 반도체가 AI 국제표준이 없는 채로 개발될 경우, 수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조성환 ISO 회장은 “반도체 선진국인 한국이 반도체 패권을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유지하려면 AI 국제 표준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녹색 전환·경제 안보 분야에서도 뜨거운 감자 된 ‘표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 전환 역시 표준 논의가 시급한 분야로 거론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파리협정에 복귀했다.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정책도 빨라지고 있다.
제품별 탄소배출량 산정, 청정에너지 사용 확대, 제조‧운송 등 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저감 등 탄소 중립 달성에도 다양한 국제표준이 필요하다. 현재 93개국이 참여 중인 ISO 순환경제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녹색 전환과 관련한 국제표준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들어선 경제 안보 이슈 안에서 표준이 논의되고 있다. 자국보호주의 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 주요국이 표준 협력을 동맹국이나 우방국의 지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연이어 국가 표준 전략을 발표한 것 역시 기술 패권을 상대국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제 표준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한국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한국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2000년부터 국제표준화 활동을 강화해 왔다. 2001년부터는 국가표준기본법에 따라 매 5년 단위로 국가표준 기본계획을 수립해 발표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은 매년 국제표준을 80여건 제안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인 최초로 조성환 회장이 ISO 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무대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턴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정보기술 등 12개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국가 표준 전략’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국가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는 오는 21일 열리는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에서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을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되는 표준화 전략에는 ▲표준화 추진 기술 ▲국제 표준 협력 ▲표준 전문 인력 양성 방안 등이 담길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의 기술혁신과 기술의 세계시장 선점을 위한 산업정책은 표준화 전략과 연동돼야 한다”면서 “디지털 전환과 녹색 전환은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서 표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4 표준포럼
표준 분야 전문가 좌담회
표준 선도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 제언
“표준으로 기술 선점한 기업, 시장 지배력 인정해야”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산업 분야의 표준 패권을 두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 기술 영역으로 다뤄졌던 표준은 이제 기술패권 경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 위기 등 산업 구조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국도 전략적인 표준화 추진이 시급한 상황이다.
표준 패권의 시대, 한국의 표준 전략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조선비즈는 정부와 기업, 학계 등 전문가 6인을 초청해 한국의 첨단산업 표준 전략의 미래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9일 서울 역삼동 조선 팰리스 강남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 진종욱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장, 손승우 두산에너빌리티 부사장, 이정준 LS일렉트릭 고문, 이해성 전주대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회 진행은 산업부 관료 출신으로 지식경제부 차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임채민 법무법인 광장 고문이 맡았다.
참석자들은 표준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 “중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표준 전략이 필요하다”(진종욱 원장)며 “기술 강국 대한민국이 향후 첨단산업에서 초격차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제 표준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이해성 교수)고 강조했다.
표준 분야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인센티브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이정준 고문은 “기술을 개발해 표준까지 제안한 기업에 대해선 해당 분야에서 일정 기간 선점할 권리를 인정하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좌담회 전문.
임채민 고문(이하 좌장) :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이다. 변화가 빠르다는 수준을 넘어 변덕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표준의 역할과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기업도 생존을 위해서는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표준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표준에 대한 새로운 룰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진종욱 원장 :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나아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을 통한 산업 대전환을 앞둔 상황에서 기술 경쟁의 주요 수단인 표준 부분으로까지 국가 간 경쟁이 확대됐다. 지난해 미국이 백악관에서 국가표준화 전략을 발표했으며, 중국도 표준전략을 새롭게 내놨다.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표준 분야까지 확산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단기적인 대응책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표준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현재 정부는 기술혁신과 세계시장 선점을 지원하기 위해 12개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국가표준화전략을 마련했다. 이번 표준화 전략의 차별화 요소는 민간 주도의 표준화 추진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 정책은 공공에 방점을 두면서 실행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또한 한번 수립한 전략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기보다는, 기술 변화에 대응해 전략을 현행화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차별화 포인트다.
좌장 :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상시로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는 표준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우리는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데, 외국은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나.
조성환 회장 : 과거 표준의 목표가 공익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 트렌드는 미래 사회를 주도하고, 기술 발전을 대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우리가 강대국이라고 부르는 선진국들이 표준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국제 표준 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미권, 유럽권,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권역까지 총 3개의 권역이 숨 막히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ISO 회장으로서 국제표준화 기구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좌장 : 한국의 표준 경쟁 참여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오늘이 가장 빠른 날’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학계에서는 표준 논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
이해성 교수 : 우리나라는 학계에서도 표준의 중요성을 인식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과학 분야에서는 나노 소재의 기준이 논란이 되면서 표준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커졌다. 당시 국제 콘퍼런스에서 나노 표준 범위가 100나노미터(㎚) 이하이므로 100.1㎚는 나노 영역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보면서 표준이 특정 산업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시장 접근의 제한으로 작용한다고 인식하게 됐다. 따라서 최근 학계에서는 표준 영역에서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과거 우리 기업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기술을 벤치마킹해 빨리 따라잡는 ‘세컨드 무버’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일류 기술 보유국이 됐다. 표준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좌장 : 기업 입장에선 표준 정책과 관련해 정부의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
손승우 부사장 : 기업은 기본적으로 ’표준’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타사와 차별화를 하려고 한다. 표준 분야가 공정한 경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이 독점 시장을 꿈꾼다. 기업은 ’하지 말라’고 해도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기술로 차별화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표준을 앞세워 기존 시장의 진입을 막고, 시장을 규제하는 데 활용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선도국은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소재를 제한하거나 규정을 신설해 자국산 소재나 제품만 쓸 수 있게 한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준 고문 : 국내 기업 중에선 우리 회사가 표준 분야에서 체계적인 접근을 하는 편이다. 표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업이지만, 여전히 전략적으로 어떻게 시장을 주도할지에 대해선 부족한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시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품개발과 시장출시에 드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러한 적시성(time to market)을 위한 표준의 역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LS일렉트릭은 확보한 기술을 적시에 표준 구축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패스트 센터’를 운영 중이다.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해야만 시장이 원하는 속도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도 글로벌 표준 동향을 기업에 전달하는 역할을 늘렸으면 한다.
좌장 : 이러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우려면, 우리의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또 세계 각국이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는 규제에 대해서도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조성환 : 표준 영역과 기술 영역을 잘 구분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표준화 전략을 수립하고, 첨단 산업군에서 산업정책, R&D 및 표준전략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의 핵심이 돼야 한다.
좌장 : 국가 R&D 과제를 수행하면서 바로 표준 수립으로 이어지도록 프로토콜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조성환 :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기업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핵심 사안으로 고려해야 한다. 삼성과 SK, 현대, LG 등 국내 대기업은 매년 수십조원을 R&D에 투자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협업을 하니 참 편하다’는 반응이 기업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특정 사례를 보면 세제 혜택을 얼마 해주겠다면서 수백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그런 절차나 후속 조치가 까다로워서 ‘안 받으면 그만’이라는 기업도 많다.
이정준 :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표준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 표준화 전략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우리 회사조차 회사 내 표준 관련 부서가 없다.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려면, 기업이 표준을 만들어 개발한 시장에 대해선 일정 기간 시장 지배력을 인정하고, 기업들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성환 : 맞는 말이지만 참 쉽지 않은 이야기다. 선제적인 R&D로 기술을 확보했더니, 중소기업과 상생하라며 기술을 공유하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과감한 투자로 기술을 개발했는데, 시장에서 규제하면 기업만 손해를 입게 된다.
이해성 : 미국의 경우, 기술을 개발하고 표준을 수립한 기업에 대해선 몇 년간 해당 시장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상업적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를 연구해 국내 적용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좌장 : 의미 있는 이야기이다. 우선 정부는 지속적인 표준정책 홍보를 통해 표준에 대한 우리 기업의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제언처럼 표준화 수단으로 배타적인 성공을 이루는 기업의 사례를 전파하는 것도 충격요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국표원을 중심으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첨단산업 분야의 국가표준화 전략을 수립해서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산업계 전반으로 표준화 인프라 확산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4 표준포럼
함상범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표준임원·전무가 “인공지능(AI)의 안전성 관리 체계에도 ‘표준’이 적용되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런 표준이 갖고 있는 의미를 통해 책임 있는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 전무는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에서 ‘인공지능 안전성과 표준’이란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함 전무는 알파고와 챗GPT 등의 출현을 상징적 사건으로 들면서 “생성형 AI가 최근 2년 내 보여준 성과를 통해 인류에 앞으로 더 많은 기회와 동력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생성형 AI가 전세계 공공 분야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힌디어·영어 외에도 100여가지 언어를 사용 중인 인도에서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심각한 문제로 존재하는데, 인도 정부는 번역기 역할을 하는 챗봇을 개발해 공공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며 “아마존 열대 우림을 끼고 있는 콜롬비아·브라질에선 불법 수렵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실이 아닌 사실을 믿게 만들거나, 특정 인종·종교에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생성형 AI에 대한 여러 우려사항과 문제점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며 “문제점이 확인되긴 했지만, AI가 여전히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한다면 ‘안전한 방향’으로 이를 사용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기술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에 ‘표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이나 영국의 AI 안전 서밋(AI Safety Summit) 등 각국의 이행 상황을 예로 들었다.
함 전무는 “특정 잘못된 학습 내용을 소거시키거나, 지식재산권·개인정보 문제가 생겨 다시 학습을 훈련시킬 때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이를 위해 나라간 협력을 통해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서비스를 제공·사용하는 기업들도 충분히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이에 대처할 유연하고 기민한 정책·전략이 요구되며 여기엔 표준이 필요하다”며 “공적표준화 기구 이외에도 사실표준화(De Facto Standard) 기구, 그리고 표준화 기구는 아니지만 오픈소스 커뮤니티 또한 이런 전체적인 책임감 있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처음 열린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는 미래 첨단산업의 국제 표준 전략을 공론화하기 위해 조선비즈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다.
최종찬 국가기술표준원 자율차 국가표준코디네이터가 “미래차 같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경우, 백지에 산업을 새로 그리는 격”이라며 “해당 세계의 표준이 있어야만 관련 인프라 등이 구축될 수 있다”고 했다.
최 코디네이터는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에서 ‘미래차 중점 표준화 계획’이란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구글이 처음 자율주행차 콘셉트를 발표하고 테슬라가 새로운 콘셉트의 차를 양산하기 시작했을 때 어떤 기업은 기존 자동차의 연장선상으로 봤을 것이고, 어떤 기업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봤을 것”이라며 “완전히 새로운 시장으로 이를 바라본다면 표준이 할 일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그는 “CV(Connected Vehicle·커넥티드카)를 예로 들면 이에 대한 VTX(근거리통신망)란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통신·보안·데이터 등과 관련한 이 세계의 표준이 없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인프라 구축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 코디네이터는 “표준 정책 전략을 만들려면 국가 정책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발표한 ‘주력산업 고도화’, ‘신성장 4.0 전략’, ‘자동차 산업 글로벌 3강 전략’ 등 미래차와 관련한 국가 전략 곳곳에 표준화에 대한 이슈가 녹아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ISO(국제표준화기구), UNECE(유엔 유럽경제위원회) 등 단체와 일본·독일 등 여타 국가의 국제 표준화 활동도 다면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국표원은 현재 미래차 표준화와 관련해 4대 전략, 11대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며 “2030년까지 산업역량 강화를 위한 국가표준 제정 30건, 국제표준 선도를 위한 국제표준 제안 41건을 목표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장을 구축해 갈 때 어떻게 스케치를 하고, 색감을 입힐지 그 가이드를 표준이 제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안정적이고 경쟁적인 글로벌 산업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어 “논문은 실험실에서 나올 수 있지만, 표준은 그럴 수 없다”며 “공론화의 장에서 토론을 거쳐야 표준은 비로소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 오늘 포럼 같은 논의의 장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처음 열린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는 미래 첨단산업의 국제 표준 전략을 공론화하기 위해 조선비즈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다.
김덕기 세종대 교수, ‘차세대 반도체 중점 표준화 계획’ 발표
첨단패키징, 소부장 기술 R&D와 연계
한국의 핵심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관이 미래 반도체 기술 표준화 활동을 추진한다. 정부는 국내 선도 기술의 글로벌 시장 확산을 위해 기업·학계와 협력해 2030년까지 반도체 첨단패키징 등 35건의 국제표준을 공식 제안할 방침이다.
김덕기 세종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차세대 반도체 중점 표준화 계획’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반도체 분과를 맡고 있다.
정부는 미래선도 반도체 기술 표준화 과제로 ▲첨단 패키징 기술 표준화 ▲국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표준화 ▲에너지·모빌리티용 초고전압 화합물 전력 반도체 표준화를 잡았다.
첨단 패키징 기술 표준화 부분에선 ‘3차원 패키징 기술’과 ‘칩렙 패키징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3차원 패키징은 반도체의 고집적화를 위해 여러 웨이퍼층을 쌓아 하나의 칩에 여러 기능을 집적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칩렙 패키징은 이종 반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접 칩간의 전자기파를 제어하는 등 고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반도체 소부장 표준화로는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초고해상도 BEUV(초극자외선)용 소재의 국산화와 함께 표준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전력반도체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고성능 반도체의 열을 효과적으로 분산하는 방열소재도 표준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기술 반도체 분야로는 AI 반도체용 신기술(뉴로모픽) 반도체의 표준화를 추진한다. 인간 두뇌의 신경세포 정보처리 방식을 반도체에 접목시켜 인지와 학습, 추론 등 고차원적 사고를 수행하는 뉴로모픽 소자의 표준화를 추진하는 게 핵심이다.
김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중점 표준화 계획의 핵심은 연구개발(R&D)과 표준, 특허를 연계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표준 활용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표준은 국가의 경제 성장률을 끌어 올리고, 기업의 수익성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
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은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에서 “표준은 공기와 같다.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표준에 둘러 쌓여져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제 표준 기구의 수장이면서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은 이날 총회에서 ‘지식과 산업의 교차로, 표준’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조 회장은 “표준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시킨다”면서 “이는 순익 증대로 이어진다.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이어 “수출 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고객의 신뢰도 높인다”면서 “비즈니스 프로세스(경영 방식)를 개선하고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고 소개했다. 기업의 표준화 노력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한국 기업의 표준화에 대한 참여도는 여타 선진국의 기업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한국 기업들은 ‘기존 표준을 잘 지키고, 인증을 받아 수출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조 회장은 한국 기업이 표준화에 소극적인 이유로 “표준화 활동이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이 표준의 효과를 체감하고, 국제 표준 활용과 제안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길 기대한다”고 했다.
국가 경제에서 표준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조 회장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선 표준 활용도를 1%만 올려도, 총요소생산성을 연평균 0.1% 올릴 수 있었다”며 “호주는 표준 활용도를 1% 올리면, 국내총생산(GDP)를 0.17%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GDP의 0.17%라면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했다.
그는 특히 첨단산업 분야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표준의 역할이 커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가 사회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마치 지수함수처럼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다”며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다. 어제의 AI와 오늘의 AI가 다르다”고 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3년에 걸쳐 AI의 표준을 만들었다면, 그 표준은 ‘표준’이 아닌 ‘유물’이 될 것”이라며 “AI가 초래할 리스크와 제공할 기회를 안전하게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현재 AI 표준 논의의 핵심”이라고 했다.
아울러 “양자기술에 대한 표준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양자 커뮤니케이션부터 컴퓨팅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며 “기후 위기와 대응에 대해서도 다양한 표준을 만들었다. ISO도 ‘ISO 14000′을 통해 쓰레기 감축부터 탄소배출 최소화까지 표준으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주요국이 표준 전략을 경제 안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한국의 표준 전략 수립과 지속적인 추진을 당부했다. 그는 “한국의 국제 표준 분야 리더십은 경제 규모나 기술 수준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다”며 “이번 총회를 계기로 더 많은 민간 분야가 표준 활동에 참여하고, 더 많은 전문가가 등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표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세계 시민’”이라며 “표준을 통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게 진정한 표준의 구현”이라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올해 1월 ISO 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025년 12월까지다. 조 회장은 현대오트론 대표와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 등을 거쳐 2020년 현대모비스 대표로 취임했다. 2023년 대표직을 마치고 고문으로 옮겼다.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석사를 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4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
정부, 2030년까지 국제표준 250여건 제안 추진
“글로벌 표준 경쟁 앞서기 위한 첫걸음될 것”
"표준은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지름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기술 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주요국의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부가 K-표준 전략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미래차, 디스플레이 등 12개 첨단산업 분야에서 표준 과제를 발굴해 2030년까지 국제 표준 250여건을 제안하는 등 표준화 논의를 선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조선비즈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은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4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를 개최했다. 국표원과 한국표준협회는 이날 총회에서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을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오늘 발표한 국가표준화 전략은 첨단산업 분야의 치열한 표준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초격차 프로젝트 등 주요 산업 정책과 국제 표준화 전략을 연계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총회 참석자들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초격차 기술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와 민관이 함께 표준전략을 수립하고 기술 발전에 대응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국가와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정부,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 발표
이날 행사의 백미는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 발표였다. 정부가 첨단산업에 대한 표준 전략을 수립해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관이 함께 만든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미래차 ▲미래선박 ▲로봇 ▲첨단제조 ▲양자기술 ▲핵심소재 ▲원자력 ▲청정에너지를 미래 첨단산업 분야로 선정하고, 2030년까지 국제표준 250여건 개발을 추진하는 게 핵심이다.
분야가 다양한 만큼 전략 수립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지식경제부 차관,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으로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의 공동의장을 맡은 임채민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지난해 9월 표준포럼이 출범한 이후 8개월 동안 12개 산업군별로 표준화 전략을 만들었고, 리더십 포럼을 통해 방향과 골격을 조율했다”면서 “국가표준화 전략 발표는 한국이 국제 표준 선점을 위한 출발점에 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첨단산업 분야 국제 표준은 ▲초격차 유지 ▲신시장 확보 ▲국산화 지원 ▲미래기술 방향성 정립 등 4개 유형으로 나눠 개발된다. 정부는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 중이고,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가 예정된 첨단산업 분야는 초격차 유지를 목표로 국제표준 개발을 추진한다.
국제 표준 논의 주도를 위한 국제협력 강화 계획도 반영됐다. 국제 표준 논의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국제표준화기구 의장단 내 한국인의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미국, 독일 등 주요 기술표준 강국과 표준포럼 및 양자회의 등을 통한 표준협력 파트너십도 강화한다.
기업의 표준화 활동 지원도 확대한다. 기업과 표준전문가를 연결해 표준 동향을 제공하고, 표준안 작성 자문 등 기업의 표준안 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을 확대한다.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표준포럼’을 신설해, 기후변화·AI 등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장도 개최할 계획이다.
정부는 국가표준화 전략을 수립하면서 기술 변화에 맞춰 전략을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전략 구조를 유연하게 구축했다. 임 고문은 “앞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비판과 지적을 받아들여서 수정·보완해 나가면서 전략을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AI 리스크, 표준이 ‘가드레일’ 돼야”… “신산업 밑그림 표준으로 그려야”
핵심 첨단산업인 AI와 반도체, 미래차 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표준 전략도 이날 총회에서 발표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함상범 최고표준임원(전무)은 ‘인공지능 안전성과 표준’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업은 표준을 통해 책임 있는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 전무는 알파고와 챗GPT 등의 출현을 상징적 사건으로 들면서 “생성형 AI가 최근 2년 내 보여준 성과를 통해 인류에 앞으로 더 많은 기회와 동력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사실이 아닌 사실을 믿게 만들거나, 특정 인종·종교에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생성형 AI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며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안전한 방향’으로 AI를 사용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통신기술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이에 대처할 유연하고 기민한 정책·전략이 요구되며 여기엔 표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의 초격차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 표준 수립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덕기 세종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중점 표준화 계획의 핵심은 연구개발(R&D)과 표준, 특허를 연계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표준 활용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내 선도 기술의 글로벌 시장 확산을 위해 기업·학계와 협력해 ▲첨단 패키징 기술 표준화 ▲국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표준화 ▲에너지·모빌리티용 초고전압 화합물 전력 반도체 표준화 등 35건의 국제표준을 공식 제안할 방침이다.
미래차와 관련해선 신산업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표준으로 산업 구조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종찬 국표원 자율차 국가표준코디네이터는 “미래차 같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경우, 백지에 산업을 새로 그리는 격”이라며 “해당 세계의 표준이 있어야만 관련 인프라 등이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코디네이터는 “CV(Connected Vehicle·커넥티드카) 분야는 VTX(근거리통신망)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통신·보안·데이터 등과 관련한 표준이 없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인프라 구축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표준으로 산업을 스케치하고, 안정적인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2030년까지 국가표준 30건 제정, 국제표준 40건 제안을 목표로 미래차 표준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포럼 공동의장인 조성환 ISO 회장은 총회 특별강연에서 “표준은 국가의 경제 성장률을 끌어 올리고, 기업의 수익성을 증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표준화 활동 참여도는 선진국 기업에 비해 떨어진다”며 “이번 총회를 계기로 더 많은 민간 분야가 표준 활동에 참여하고, 더 많은 전문가가 등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는 미래 첨단산업의 국제 표준 전략을 공론화하기 위해 조성된 회의체다. 지난해 9월 12개 첨단산업 분야 민간 표준포럼이 조직됐고, 이날 첫 총회를 개최했다.
조선비즈·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2024 첨단산업 표준리더십 포럼 총회’가 성료했다. 이번 행사에는 표준 전문가뿐 아니라 연구원·기업·학교·정부부처 등 다양한 소속의 참석자 40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오전 8시 시작된 이른 시간임에도 행사장은 붐볐다.
첨단 산업의 국가 표준화 전략을 논의한 이번 포럼은 올해 처음으로 열렸다. 특히 포럼 출범 이후 지난 8개월 동안 1000여명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정부의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이 공개돼 더욱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표원은 “2030년까지 12개 주력 분야에서 국제표준 250여건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표준 전략 발표 이후 조성환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포럼 공동의장의 특별 강연, 반도체·인공지능(AI)·이차전지 등 세개 분야별 표준 전문가들의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 이후엔 최갑홍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이날 강단에 오른 5인이 참석한 패널 토의가 30분간 이어졌다.
최 교수는 “첨단산업, 표준 과정에서의 리더십, 이를 위한 표준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 표준 인프라가 이날 포럼에서 강조된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고 정리했다. 오광해 국표원 표준정책국장은 “첨단산업 표준 전략의 ‘수행력’을 담보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이를 위해선 예산도 중요하다”며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르고, 사회 환경도 급격히 변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이행 점검 일정도 로드맵에 잘 담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청중의 질문도 이어졌다. ‘중소·중견기업이 표준화 활동을 하기엔 제약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 함상범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표준임원·전무는 “표준화 활동에 인적 자원이나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이해하는바”라면서 “무엇보다 표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주는 게 굉장히 필요하다. 표준화가 본인들에게 의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전략적으로 (표준화에 비용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표준을 개발하는 데 직접적으로 참가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개발된 표준을 도입해서 본인들에게 이득 되는 방향으로 적극 적용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의 국제 표준화 활동 지원책과 관련해 오 국장은 “R&D-표준 연계 지원 사업과 이에 이어달리기 격인 국가표준 기술력 향상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실제 국제 표준에 접근하는 데에는 상당히 높은 진입장벽이 있는데, 이에 대해 표준 자문을 해주는 컨설팅 사업도 1년에 20개 기업에서 40개 기업까지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려고 한다”고 했다.
3시간45분간 진행된 이날 포럼 종료 후 조성환 ISO 회장은 “여러 행사를 했지만, 이번 표준화 포럼 총회는 참 뜻이 깊고 조직화가 잘된 행사”라며 “이날 총회를 계기로 많은 분들이 표준이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 중인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표준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인적 네트워크를 얻어갈 기회였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고려대 법학연구원에서 전자서명·전자문서 분야를 연구 중인 권혁심 선임연구원은 “법학을 공부했지만, 전자문서 분야를 연구하며 뒤늦게 기술 표준을 접하게 됐다”며 “기술이 장악한 세계에서의 법이 표준이라고 생각했다. 표준화에 대해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해 보기 좋았다”고 했다. 단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포괄적인 설명이 많았는데, 좀 더 디테일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뤄주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는 미래 첨단산업의 국제 표준 전략을 공론화하기 위해 조성된 회의체다. 지난해 9월 12개 첨단산업 분야 민간 표준포럼이 조직됐고, 이날 첫 총회를 개최했으며 앞으로도 총회를 통해 표준화 관련 전략을 지속해서 논의해 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