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전력량 6년 내 2배 증가”
“신재생·원전 등 청정 공급원 다 필요”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서비스용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면서 전력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텐데, 결국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이 가장 적합한 무탄소 전력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미래에너지포럼’에 참석해 ‘인공지능과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믹스’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가장 많이 보급된 4세대 서버의 하루 전력 사용량이 전기차 18대와 맞먹는다”며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현재 400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1000TWh로 2배 넘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급증하는 전력 사용량을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와 기업이 긴 시간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해 연간 250TWh의 전력 공급량을 확보했다”며 “당장 6년 뒤에 연간 500TWh의 전력을 추가로 충당해야 하는데 한 가지 에너지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원전, 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CFE)가 모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원자력 발전은 무탄소 전력 공급량을 가장 빨리 늘릴 방법”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이다.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최초로 수출한 원전이다. UAE는 바라카 원전을 통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무탄소 전력을 확보했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정 교수는 “바라카 원전은 UAE 전력 사용량의 4분의 1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적절한 ‘에너지 믹스(에너지원 다양화)’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생태계 변화를 볼 때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여년”이라며 “화석연료를 못 쓰게 되면 태양광 발전과 원자력 발전 두 가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 등 청정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모두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태희 효성중공업(328,000원 ▼ 18,000 -5.2%) 대표이사는 “전력 수요가 늘어나면서 앞으로 전력 송·배전 인프라(기반시설)를 얼마나 잘 구축했는지, 전력 손실을 얼마나 적게 하는지가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 대표는 27일 조선비즈 주최로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4 미래에너지포럼’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어느 한쪽도 무시할 수 없고 같이 가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 대표는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탄소 중립 ▲디지털화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등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 세계 전력 수요는 현재 정책을 유지하는 시나리오(STEPS)상으론 2050년에 3만8746TWh(테라와트시)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중립 달성 시나리오(NZE)에 따르면 전력 수요는 2050년 7만3874TWh로 늘어난다. 우 대표는 “두 시나리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소”라면서 “2040년 이후에 수소가 얼마나 에너지를 대체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그리드(전력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고 변동성이 크며, 예측이 어렵다”면서 “제주도와 영국 등에선 오히려 재생에너지를 필요보다 더 많이 생산해 버리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드 투자는 2030년까지 연평균 12.4%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2030년까지 500개 이상의 전력망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호주는 2050년까지 1만㎞에 이르는 신규 송전망을 건설하는 등 각국의 글로벌 전력 인프라 투자 수요는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대표는 “전력 수요가 커지면서 앞으로는 송·배전의 전쟁이 될 것”이라며 “이 시장을 잘 통제하고 해결책을 찾는 국가가 미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발전으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원전으로 수소를 생산하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하재주 원자력학회장)
6일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략 포럼’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무(無)탄소 에너지원인 태양광·풍력과 원전, 수소를 모두 활용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재주 원자력학회장은 개회사에서 "기후위기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인 신재생 에너지, 원전, 수소는 모두 단점을 보유한다"며 "원전의 위험성,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수소의 까다로운 생산·수송·저장이라는 단점을 극복하면서 각 에너지원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경제성도 갖춘 에너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의 효율성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진호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한국에너지학회 수석부회장)는 "2050년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은 2018년과 비교해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시설을 강제로 닫지 않는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태양광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난 10년간 비용이 80% 가까이 급격히 절감된 영향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재생에너지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보급과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비해 기존 인프라 준비가 미흡하다"며 "재생에너지는 생산하는 곳에서 바로 소비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100% 계통에 물리는 형태"라고 했다.
박 교수는 재생에너지 설비공급이 빠른 제주도는 이미 발전량 증가로 출력제약(curtailment)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출력제약은 낭비 요소가 많은데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대응에서 원전의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원자력 증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원전을 2030년까지 지금의 약 2배, 2050년이면 약 6배까지 늘려야 기후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이라는 기후대응 목표를 달성하려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의 도움 없이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해야 하는데, 원전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지금은 하루 4시간 돌아가는 태양광을 대체하려면 나머지 20시간을 가스에 의존해야 한다"며 "그러나 가스를 보조발전원으로 자주 사용하게 되면 출력변동으로 인해 효율이 석탄발전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질 뿐 아니라 메탄가스도 배출된다"고 했다. 보조발전으로서 가스는 환경성은 물론 경제성도 나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한 운전이 가능한 무탄소 발전원인 원전을 국가 에너지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원전은 가스복합발전과 비교해 출력 조절이 쉽고 운전 중 탄소배출량도 제로(0)"라며 "대한민국의 무탄소 미래를 위해 원전을 보조발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으로 자율운전이 가능한 미래형 원자로와 분산전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SMR)을 제시했다.
또 원전이 제 역할을 하려면 안정성이 확인된 원전의 계속운전을 허용하고,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해 20년간 계속운전하면 발전량은 15조7000억kWh(킬로와트시)로 늘고 한국전력 (23,650원 ▼ 300 -1.25%)의 매출은 같은 기간 600조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금의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 발전량은 10조kWh에 머물고 한전은 600조원을 LNG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