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조선비즈 주최로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THE ESG 포럼’에 참석한 관계 당국과 회계업계, 학계 전문가들은 “ESG 공시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이 ESG 정보 수집·관리를 위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패널 토론은 한종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이상원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공정시장과 사무관, 황정환 KPMG삼정 회계법인 파트너, 권세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ESG 경영실장, 고은해 서스틴베스트 리서치&IT본부장, 권성식 한국표준협회 ESG 경영센터장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공시 제도 안착을 위해 우선 해결돼야 할 점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ESG 공시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ESG 데이터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세원 이화여대 교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양질의 ESG 정보를 가려내기 위해 ESG 평가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ESG로 새로운 금융시장과 투자 기회가 열린 셈인데,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ESG 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고은해 본부장도 “투자자는 ESG 정보를 통해 재무제표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ESG 정보를 알고 싶어 한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재무 성과와 ESG 성과 사이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다”고 했다. 고 본부장은 이어 “투자자들은 기업별·산업별로 고려해야 하는 ESG 정보가 다르다면 평가에서도 각 요소에 가중치가 반영되길 바란다”며 “평가사 역시 이 차이점을 분석해 실제 평가에 반영한다”고 했다.
기업은 ESG 공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공시 의무화가 기업에 부담과 리스크를 안길 수 있다면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모든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ESG 정보 관리용 통합 플랫폼을 정부와 금융당국이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윤철민 대한상의 실장은 “ESG 정보를 알리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부실 데이터를 토대로 공시해야 하는 기업은 부담이 크다”면서 “ESG 공시에 따라 공급망 실사,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배출량 의무보고를 위해 기업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정보기술(IT) 시스템을 구축한 기업은 14%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싱글 억세스 포인트’처럼 외부에서 기업의 재무 정보뿐 아니라 비(非)재무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면 좋겠다”고 했다.
기업은 아직 공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ESG 공시를 사업보고서에 올리는 것에 대한 ‘법률 리스크’ 우려도 제기했다. 윤 실장은 “사업보고서에 ESG 공시 내용을 포함했을 때 자본시장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상원 금융위 사무관은 “ESG 공시가 새롭게 도입되는 만큼 현장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면서 “정부는 ESG 공시 도입 단계별로 규제 수준을 차등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제도 도입 초기에는 기업 제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직접 기업을 대상으로 ESG 컨설팅(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은 ESG 공시 제도가 안착하려면 공시 자체보다 기업이 직접 ESG 정보를 관리하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성식 표준협회 센터장은 “기업이 ESG 평가를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인식해 ESG 공시 준비를 비용으로 본다”면서 “기업이 ESG를 기업가치와 직결해 생각하고, 직접 마련한 내부 시스템을 상시로 모니터링·관리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황정환 KPMG삼정 파트너는 “무엇보다 ESG 공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업 내부에서 ESG 정보를 직접 추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ESG 인증 기관도 윤리·정보 품질관리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했다. 또 그는 “정보 인증을 반드시 법무법인·회계법인의 업무로 단정할 필요가 없다. 재무정보의 종류·사업섹터에 따라 다양한 인증평가 기관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 “주도권 싸움을 떠나 ESG 정보 인증 시장이 안착하도록 협업 체계가 구축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D
이 사무관은 “ESG의 개념 자체는 대중에게 친숙하지만 ESG 공시와 그에 따른 평가·투자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한 점이 많다”면서 “공시 주체인 기업이 과도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공시 의무화 시기도 2026년 이후로 연장했고, 기후 분야 공시 의무화를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 “회계업계·기업·유관기관 등과의 논의와 ESG 민간합동정책협의회 등을 통해 다양한 ESG 공시·인증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