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
‘2023 대한민국 푸드앤푸드테크대상’ 농식품부 장관상 수상
최대 6개월 탄산 보존 가능한 ‘개폐형 캔 마개’ 기술 보유
2022년 8월, 특허 보유한 독일 회사 ‘엑솔루션’ 인수
2025년 상장 목표… “네슬레·P&G같은 기업 되고파”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찬 바람이 불어닥친 올해, 푸드테크(음식과 기술의 결합) 스타트업 이그니스는 지난 9월 348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그니스의 자회사인 독일 기업 엑솔루션(Xolution)의 ‘재밀봉이 가능한 캔 리드 XO(개폐형 마개)’가 적용된 음료들이 미국 월마트 등 글로벌 유통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 엑솔루션은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 E&J 갤로, 워터버드, 펩시 등 글로벌 주류·음료 회사들에 캔 마개를 공급하고 있다.
이그니스는 지난 2014년 설립 후 국내 최초로 기능성 단백질 간편식인 랩노쉬를 개발·판매하며 이름을 알리고 회사를 키웠다. 랩노쉬는 GS25와 CU 등에서 단백질 드링크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웰빙과 다이어트 열풍에 힘입어 꾸준한 소비자층을 확보한 제품이다. 한끼통살도 업계 판매 3~4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든든한 ‘캐시카우’다.
단백질 음료·닭가슴살을 판매하던 이그니스가 푸드테크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를 가져다 준 엑솔루션은 지난해 8월 자회사가 됐다. 엑솔루션은 개폐형 마개 특허를 가진 회사다. 개폐형 마개는 캔 음료의 뚜껑을 다시 닫아 재밀봉을 가능하게 하는 제품으로, 캔 뚜껑 대신 작은 플라스틱이 달려있다. 이 마개로 음료 입구를 막으면 6개월 이상 탄산을 보존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 마개를 올해 초 CES 2023에서 전시했고, 잠재적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그니스가 회사의 성장성에 날개를 달아준 엑솔루션을 인수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그니스와 독점 거래를 막 시작한지 4개월 만에 엑솔루션은 부도가 났다. 부도가 난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박 대표는 독일행 비행기 표를 끊고 독일 파산법원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2주만에 이 독일 회사를 인수했다.
조선비즈가 주최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후원하는 ‘2023 대한민국 푸드앤푸드테크대상’에서 이그니스는 이 개폐형 마개로 푸드테크 부문의 기술력을 인정 받아 장관상을 받았다.
지난 달 23일 서울 성동구 이그니스 본사에서 박찬호(38) 이그니스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올해 초 미국 CES 2023도 참가하는 등 기술을 알리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는데, 장관상 수상이 푸드테크 기업으로 인정받은 것이란 생각에 무척 기쁘다”며 “2025년에는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최근 투자 시장 불황 속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엑솔루션 인수가 회사의 규모를 한 단계 끌어올려줄 거라고 투자사에서 봐주신 것 같다. 올해 1분기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2014년 이후 한 해 빼고 매년 적자였는데, 올해 흑자 전환을 했다. 매출 규모는 지난해 500억원이 넘었고, 올해는 1000억원 초반을 예상하고 있다.
클룹의 매출이 210억원, 랩노쉬가 320억원, 한끼통살이 430억원, 그로서리서울(곤약밥)이 40억원 가량의 매출을 낼 전망이다. 자회사 엑솔루션의 매출은 여기에 별도로 100억원대 중반을 예상한다. 덩치를 키우면서도 수익성이 좋아져서 투자사들이 좋게 봐주셨다.”
─투자금은 어떻게 쓸 건가.
“100억~150억원 정도는 개폐형 마개 설비 증설에 쓸 것이다. 나머지 200억원은 상장 목표 시점인 오는 2025년 전까지 회사 운전 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자사 몰 외 채널에 납품할 때 일시적으로 돈이 묶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를 대비하는 용도로도 쓸 예정이다.”
─이그니스가 생판 모르는 독일 회사 엑솔루션을 인수하게 된 과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맨 땅에 헤딩’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물을 플라스틱 병이 아니라 알루미늄 캔에 담은 제품이 인기인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캔 물’을 개발해서 팔아보자는 아이디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업들이 주류인 물 시장에서 차별화 지점을 찾으려고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캔 물을 다 모아봤다.
그러다 우연히 엑솔루션의 개폐형 마개를 사용하는 캔 물을 접했고, 들고 다니면서 먹어보니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엑솔루션 최고경영자(CEO)에게 이그니스를 소개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우리랑 이 개폐형 마개를 한국에서 독점 거래하자고 했다.
그런데 당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엑솔루션과의 소통이 너무 지지부진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릴테니 만나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엑솔루션 관계자들을 만난 것이 2021년 10월이었다.”
─만나서 어떤 얘길 했나.
“엑솔루션 CEO를 포함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발표를 했다. 미국·유럽 시장 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우리가 개척해 주겠다는 게 요지였다. 수개월간 설득을 했고, 2022년 3월에 드디어 개폐형 마개를 적용한 ‘제로소다 클룹’을 개발해 편의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납품 받아서 OEM 공장들을 돌며 ‘이 뚜껑을 제조 공정 마지막에 달 수 있도록 설비 개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장 입장에서 귀찮은 요청이기 때문에 정말 험난한 거절의 연속이었다.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마침내 클룹을 생산할 곳을 찾았다.”
─납품 받던 거래처를 어쩌다 인수했나.
“솔직히 말하면 엑솔루션의 성장 가능성 이런 것들은 볼 여유도 없이 ‘질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편의점 채널에서 클룹을 판지 4개월만인 2022년 7월에 엑솔루션이 갑자기 개폐형 마개를 납품하지 않으면서 차일피일 거래를 미루는 거다. 화를 냈더니 ‘사실은 부도가 났다’고 했다. 눈 앞이 깜깜했다. 이 뚜껑이 없어서 클룹을 못 만들고, 편의점에 납품 못하면 위약금이 꽤나 세기 때문이었다.
엑솔루션이 파산 신청을 했고, 파산 관재인한테 회사가 넘어갔으며, 매각 자문사를 찾아서 매각하는 과정에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우리가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얼마에 파는지도 들어보지 않고 무작정 말을 꺼낸 거다. 엑솔루션 측도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과정이 얼마나 걸렸나.
“2주 만에 매각 대상 자산과 회사 재무 상태, 특허 보유 여부 등에 대해 꼼꼼히 실사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경쟁 상대가 몇 곳인지도 모르는 채 인수 과정에 임했는데, 나중에 독일 매체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100곳이 입찰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과정들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간 나머지 인수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이게 꿈인가’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급하게 하다가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움은 없었나.
“밤을 새가며 엑솔루션이란 회사를 뜯어봤지만 이 회사의 ‘위험 요인’을 찾지 못했다. 일시적인 자금 동결만 해결하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독일 법원이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산의 실제성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무엇보다 개폐형 마개를 납품받지 못해 클룹 생산을 못하고, 편의점에 위약금을 내는 상황이 오는 게 죽어도 싫었다.”
─애초에 엑솔루션은 왜 파산했을까.
“미국에 공장을 임대해서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자 했는데 계약금을 납입하고 잔금일에 잔금을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대표이사가 부도 조짐을 인지한지 한달 안에 파산 신청을 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을 강하게 받는다. 이 때문에 서둘러 엑솔루션 CEO도 파산 신청을 했던 것이었다.”
─현재 개폐형 마개 생산 설비는 어디에 있나.
“체코와 독일에 있다. 엑솔루션이 파산한 계기가 됐던 미국 신(新) 설비도 현재 구축하고 있다. 이 설비가 구축되면 현재 마개를 월 1000만개를 생산하는데, 앞으로는 월 5000만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창업 후 거의 매년 적자였다면 어려운 순간도 많았겠다.
“회사가 망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려운 적도 있었다. 지난 2015년 10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첫 제품이었던 단백질 음료 ‘랩노쉬’가 대박이 났다. CJ올리브영에도 입점하고, 이후 2018년까지 우연히 너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자만심도 생겨났다. 그러다 시리즈A 투자를 70억원을 받았다. 투자까지 받았는데 매출이 정체되니 조바심이 생겼다. 투자금 절반을 마케팅에 쓰는 우를 저질렀다.
그 이후 2020년까지 정말 회사가 망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3개월만에 만들 수 있는 제품’을 찾아냈고, 그 때 만든 게 현재도 잘 팔리는 ‘곤약 밥’과 한끼통살이다. 이 때 만든 제품들이 현재까지도 회사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후 개폐형 마개를 적용한 클룹으로 회사의 성장세에 날개를 달았다.”
─전체 판매 실적에서 자사몰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최대 70%까지 갔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40~50% 사이를 오간다. 자사몰 비중이 꽤 큰 편이다. 쿠팡, 컬리나 편의점 등의 채널은 인지도를 올리고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노출시키기에는 좋지만, 수익성이 좋지 않다. 그래서 자사몰 실적이 좋지 않을 때도 꾸준히 운영하면서 재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늘렸다. 식품회사는 영업이익을 내려면 자사몰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랩노쉬를 만들게 된 계기는.
“미국에 ‘소이덴트’라는 단백질 간편식이 있었는데, 개발자 출신의 대표가 식사가 귀찮아서 만든 제품이 화제였다. 저 또한 식사에 애착이 많지 않은 편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이 완벽해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내보자는 생각을 했다.
랩노쉬 프로토타입 제품은 열량이 500㎉여서 진짜 식사를 대체할 수도 있었다. 공동 창업자와 함께 한달 동안 그 음료만 마시고 살면서 안전성을 직접 테스트해본 적도 있다. 그러다 우리나라 시장 트렌드에 맞게 열량도 줄이고 건강 관리, 다이어트 식단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공략하기로 했고 잘 됐다. 2020년 말부터 대기업에서도 단백질 음료 시장에 많이 진출하면서 시장이 커졌지만 여전히 1, 2위를 수성하고 있다.”
─푸드테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비자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술 전반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푸드테크 기업에 배달의 민족과 같은 식품과 IT의 결합을 만들어낸 기업들이 주로 포함됐지만, 이제는 식물성 단백질 등 다양하게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엑솔루션의 개폐형 마개를 많이 사용하게 돼서 플라스틱보다 알루미늄을 더 많이 쓰고 재활용율이 높아진다면 IT 기반이 아니어도 이 또한 푸드테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그니스를 어떤 기업으로 키우고 싶은가.
“네슬레, 더 넓히면 P&G 같은 기업이 됐으면 한다. 이들은 100년 가까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제품과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들이다. 식품기업은 소비자들의 변화가 빨라서 충성도 높은 브랜드를 갖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브랜드 디벨로퍼(brand developer·브랜드 개발자)’가 이그니스의 비전이다.”
◇박찬호 대표는
▲서강대 경제학과 ▲대우인터내셔널 투자사업/해외관리팀 ▲2014년 이그니스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