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25
한남식 연세대 겸 英 케임브리지대 교수
“로켓보다 힘든 신약 개발, AI·양자가 해결”

“로켓을 달이나 화성에 보내는 것보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게 비용이 네 배 듭니다. 이러한 신약 개발의 난관을 인공지능(AI)과 양자 컴퓨팅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AI와 양자컴퓨터를 접목해 신약 개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한남식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6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HIF 2025)’의 두 번째 기조연사로 나서 신약 개발의 새 시대를 여는 전략을 소개했다.
한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밀너연구소에서 인공지능연구센터장을 맡아 양자-AI 약물 발견을 연구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최근 연세대 융합과학기술원 양자정보학과 교수를 겸직하면서 연구 거점을 한국까지 확장했고, 한국과 영국을 잇는 공동 연구 생태계 조성에도 앞서고 있다. 현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 교수는 이날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수조 원이 들고,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걸리지만, 성공률은 10%도 안 된다”며 “약효나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애초에 질환 타깃을 잘못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과학적 이유로 실패한다는 건, 곧 과학적으로 개선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라며 “AI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2017년을 기점으로 AI가 신약 개발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AI가 발굴했거나 개발 과정에 참여한 신약 후보 중 25개가 임상 단계에 있으며, 구글, 아마존, IBM 같은 글로벌 테크 기업들도 AI 활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AI는 화학 구조를 예측하고 새로운 분자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이미 큰 임팩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약물 타깃 발굴과 질병 메커니즘 규명에서 사람의 직관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알파고가 인간이 ‘실수’라 여겼던 수로 판세를 바꾼 것처럼, AI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경로에서 혁신적 신약 후보를 찾아낼 수 있다”고 비유했다.
한 교수 연구진은 최근 멀티 오믹스(Multi-Omics) 데이터를 이용해 폐암과 같은 주요 질환의 유전자, 단백질 네트워크를 분석하고 있다. 멀티 오믹스는 유전체, 단백체 등 다양한 집합체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질병의 원인을 탐색하는 분야다.
그는 “환자만이 가진 특이 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핵심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게 목표”라며 “이를 통해 고품질의 생명 정보 데이터를 구축하고, AI로 타깃과 질환 간의 관계를 예측해 약물 타깃을 발굴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AI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를 ‘양자컴퓨터’로 보완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약물 타깃을 발굴하는 데 핵심인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PPI) 네트워크는 복잡도가 매우 높다”며 “AI는 한 번에 하나의 경로만 탐색하지만, 양자 알고리즘은 ‘손오공의 분신술’처럼 여러 경로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컴퓨터는 전자가 없거나 있는 것을 0과 1의 이진수 비트(bit)로 데이터를 처리한다면, 양자 컴퓨터는 0과 1이 중첩된 큐비트(qubit)를 이용해 동시에 방대한 연산을 수행한다. 양자 컴퓨터 기반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분자 구조나 단백질 상호작용 같은 복잡한 문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한 교수는 “이 접근법을 활용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운 타깃까지 탐색할 수 있다”며 “AI와 양자의 결합이 신약 개발의 탐색 효율과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