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인공지능(AI) 프로젝트를 추진한 기업 가운데 단 10%만이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90% 기업들은 수준 높은 AI 기술을 개발해 비즈니스에 적용했음에도, 제대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업은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수익창출을 위해 혁신을 시도한다. AI처럼 누구나 눈독을 들이는 최신 기술일 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작 혁신과 ‘최신 기술’을 상징하는 AI 기반 비즈니스 열에 아홉이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공지능(AI) 간편투자 플랫폼 ‘핀트(Fint)’를 운영하는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의 정인영 대표이사는 29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1 미래금융포럼' 강연에서 “거의 모든 금융사가 펀드나 랩어카운트 같은 상품을 개발하는 순간에만 AI 기술을 사용하지, 정작 서비스를 시작하면 AI에 무관심해진다”며 “AI 기술은 금융 소비자의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촉매(catalyst)로 쓸 때 그 가치가 빛난다”고 말했다. AI 기술을 미래 사업에 접목하려는 금융사라면, AI를 통한 가치 창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숙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디셈버앤컴퍼니가 운영하는 투자 플랫폼 핀트는 출시 2년 만에 누적 가입자 수 44만명, 누적 투자일임 계좌 수 10만7000여건을 확보했다. 지난해 KB증권과 NC소프트로부터 총 600억원을 투자받은 데 이어 올해 BC카드로부터 신규 투자 99억원을 유치할 정도로 간편투자업계에서 평판이 좋다.“금융 상품은 한 번 팔면 끝난다. 수익을 정산할 때까지 다시 그 상품을 볼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금융 상품을 판다’는 생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자산을 쌓는다’는 개인의 행위에 집중한다. 그러면 금융 소비자가 앱을 다운받는 순간부터 ‘이 사람과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 여정을 함께할 지’ 고민하게 된다.”
게임업계 출신인 정 대표는 투자상품을 일회성으로 파는 시중 금융권의 서비스와 금융투자 플랫폼의 차이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유명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빗대어 설명했다.
1998년 3월 미국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가 내놓은 스타크래프트는 본래 CD를 동봉해 패키지로 파는 게임 ‘상품’이었다. 이 게임은 발매 직후 게임성을 인정받아 매니아들을 상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블리자드는 이들을 위해 인터넷을 통한 ‘배틀넷’이라는 별도의 온라인 방식 대결 서비스를 지원했다. 이용자를 고려한 ‘후속 서비스’ 차원이었다. 이후 이 서비스가 매니아를 넘어 평소 게임을 즐기지 않던 유저들까지 끌어들이면서 스타크래프트는 기네스가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략 게임’ 자리에 올랐다.
정 대표는 “보통 인기가 몇년 지나지 않아 시들하는 다른 유명 게임과 달리 스타크래프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소프트웨어 반열에 올린 비결은 ‘패키지로 판매하면 끝’이었던 기존 시스템을 ‘판매를 해도 온라인으로 재밌는 콘텐츠가 업데이트 되는’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라며 “현재 넥슨이나 NC소프트, 넷마블 같은 국내 게임사들도 AI 기술을 이용해 이용자들에게 끊임없이 애착(attachment·정서적 유대관계)을 높이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운영하는 투자 플랫폼 핀트는 이 ‘애착’을 높이기 위해 투자자의 자발적이고 꾸준한 투자를 유도한다. 기존에 적립식 투자라 불리는 방식을 ‘꾸준히 투자’라 부르며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고, 모의 투자를 지원해 투자자가 AI 투자 방식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핀트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엔진 ‘아이작(ISSAC·Intelligent Strategic Asset Allocation Core)’도 24시간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이용자를 지원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과학자 뉴턴(Newton)의 성(姓)을 딴 아이작은 전 세계 자산 가운데 가장 좋은 조합을 결정하고, 다음날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반성을 하면서 매일 투자 정보를 구축해나간다.“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아이작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느냐, 금융공학적으로 어떻게 설계했는냐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금융을 투자상품으로 보는 질문이다. 상품을 넘어 서비스로 접근하려면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 기술 자체보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10만원 밖에 없을 때는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지?’ 같은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는 뜻이다. AI는 이런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 그 순간에 쓰면 된다.”
오늘날 금융상품들은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든 수준으로 고도화됐다. 많은 사람이 돈, 시간, 배경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회피한다. 정 대표는 이 금융 상품의 장벽을 뛰어 넘어 금융 소비자를 서비스로 끌어오려면 ‘AI 기술보다 구성원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루뭉술해 보이는 금융 소비자들의 고민을 AI기술이나 코딩을 이용해 풀어내려면 굉장히 다양하고 세부적인 문제들을 정의해야 한다”며 “문제를 어떻게 찾아내고, 해결가능한 형태의 문장으로 만들어내느냐가 조직 구성원의 핵심 역량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그래서 ‘기존 금융사들이 핀테크 기업과 협업을 하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금융 상품 판매'에 익숙한 조직 문화를 가진 기존 금융사들은 AI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금융 소비자들의 현재 상황과 회사 역량을 정확히 파악해서 전사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 구성원 한명 한명을 2·3차 산업 마인드에서 벗어나게 이끌지 못하는 거죠.”
2021 미래금융포럼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통해 이날 오후 2시부터 생중계됐다.
= 유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