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만나서 들어야 할 이야기를 유통포럼에서 한 번에 다 들을 수 있어서 매년 오고 있어요.”
“실버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일본기업 고령화 극복 세션을 듣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유익했어요.”
조선미디어그룹의 경제전문매체 조선비즈가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인공지능(AI)과 미래유통, 기계가 당신의 소비성향을 파악한다’라는 주제로 ‘제6회 유통산업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500여명 이상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포럼은 급변하는 기술혁명 속에서 유통업계의 혁신방안을 모색해 보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은 △미래의 유통 이슈와 전망 △유통산업 상생과 정책방향 △일본기업의 고령화 시대 불황 극복 전략 △전환기 맞은 면세산업의 과제와 미래 등 4개 세션으로 진행됐다.
지난 2016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알파고 모멘텀’ 이후 AI는 우리의 실생활 속에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홍대 골목 보세 상인과 뉴욕의 소비자가 연결되는 게 현실이 됐다.
우리 유통업계는 이런 현실을 가능케 한 아마존, 알리바바와 경쟁해야 한다. 고객의 소비성향과 욕구를 파악하지 못하면 유통업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포터 에리스만 전 알리바바그룹 부사장(‘알리바바의 세계’ 저자)은 “전통적인 유통업체들을 위협하는 후발주자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며 “기존 업체들은 대대적인 혁신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는 등 다양하고 절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알리바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마켓 플레이스, 물류, 결제, 클라우드가 끊김 없이 연결돼 있고 이런 경험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며 “보물찾기라는 의미의 타오바오를 만든 것처럼 쇼핑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에리스만은 마윈(馬雲)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면서 알리바바가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해 중국에서 가장 큰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아시아태평양 유통부문 대표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혁신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고객들은 빠른 변화를 원하는데 대기업들은 과거에 구축된 시스템을 개혁하기가 쉽지 않다”며 “해외에서도 월마트와 까르푸, 베스트바이 등 기존의 오프라인 대형 유통기업들이 아마존 등에 밀려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비층은 자신의 세대에서 만들어진 기업이나 제품을 선호하고 전 세대에 설립된 기업과 제품은 불신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현재 가장 젊은 소비자들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 역시 롯데, 신세계 등 기존 대형 유통기업들에 대한 선호도가 베이비붐 세대보다 훨씬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국경 허물어진 유통산업…‘아마존 알리바바’ 경쟁하려면 혁신해야
기조연설에 이어진 세션1 토론자로 나선 이진성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은 “롯데는 오프라인 유통에서의 강력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온라인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철 신세계 SSG닷컴 상무는 “IT 개발인력을 확충하고 전담부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현재 SSG만의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최단시간 배송체계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기술을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션2에서는 정부의 대형 유통업체 규제 타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2010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이후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지정 등 각종 규제를 받고 있다. 소상공인 측과 대형마트 측은 상생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규제에 대해선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설도원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부회장은 “최근 유통업계는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유통기업이 출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AI, 로봇 등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다”며 “유통업이 고도화·선진화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상당 부분 규제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화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실장은 “대형 유통업체와 소상공인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내 잘 협력했다면 규제라는 정책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며 “유통시장은 이미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정부가 유통산업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개입한 것”이라고 했다.
서기원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장은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정부 제도 자체는 중소기업과 대형 유통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루”라고 설명했다.
문재호 공정거래위원회 유통거래과장도“상생,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거래 환경을 정착해 납품업체 권익을 보호하고, 생태계 전반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시급하고 필요하다”고 말했다.
◇ 고령화 먼저 겪은 일본, 소비자 위해 빠르고 편리한 제품 개발
세션3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 불황을 극복한 일본 전문가와 기업의 사례를 들어보는 장이 마련됐다.
스즈키 아키히로 유통전문 잡지 쇼교카이 편집장은 “고령화 시대에는 혼자 사는 부부, 자식과 떨어져 지방에 사는 노부부가 많다”며 “외식이 어려운 노인층은 쌓아놓고 먹을 수 있는 유통기간이 긴 냉동식품에 대한 수요가 높다. 세븐일레븐은 고령층이 좋아하는 생선을 복잡한 조리과정 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도록 상품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신선식품 배달업체 오이시쿠스(oisix)의 오쿠타니 타카시 이사는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면서 20분 정도 잠깐 조리하면 완성되는 밀키트(meal kit, 간편요리세트)가 인기”라며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 혹은 설탕이 소량 들어간 우마미 밀키트도 인기”라고 말했다.
김창주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일본마저도 저출산, 고령화, 뉴노멀에 대한 준비는 미흡하지만 우리에게 주력 소비자층이 변하고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했다. 김용원 GS슈퍼 대표는 “8년 후면 한국도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국내 유통업체들도 고령화를 감안한 상품개발, 오프라인의 디지털화 자체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 ‘면세점4.0’ 시대…규제 완화로 세계 1위 경쟁력 살려야
마지막 세션에서는 ‘전환기를 맞은 면세산업의 과제와 미래’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면세점 4.0’ 시대를 맞아 연 매출 13조원의 ‘산업’으로 성장한 면세업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국 배재대 교수도 “면세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로, 면세점을 부자들이 향유하는 문화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국민 10명 중 7명이 매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만큼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면세점과 두타면세점은 기업 입장에서 느끼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창영 롯데면세점 상무는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화하고 면세사업자는 스스로 경쟁력을 제고 할 수 있도록 혁신을 가속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식 두타면세점 상무는 “신규면세점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선 특허수수료 인하와 특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웅 기획재정부 부총리 정책보좌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면세점 입찰 비리와 관련해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현행 면세점 제도에 관해 심도 있게 고민 중”이라며 “중소중견 면세점의 매출이 크진 않지만 시장 독과점 형성을 정부가 방치할 수는 없는 만큼 TF에서도 중소중견 면세점, 지역 소상공인에 대한 상생협력 가중치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