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25
엄현석 국립암센터 면역세포 유전자치료제 전주기 기술개발연구단장

“카티(CAR-T) 세포 치료제는 혈액암을 넘어 고형암, 자가면역 질환, 감염 질환에서도 효과가 확인됐다. 치료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제조 비용을 줄이고, 보다 빠르게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국산 카티 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겠다.”
엄현석 국립암센터 면역세포 유전자치료제 전주기 기술개발연구단장은 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HIF 2025)’ 강연에서 “국립암센터는 뇌암과 간암 등 고형암을 대상으로 국산 카티 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카티 세포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가진 T세포란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동물 키메라처럼,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 표면의 항원과 결합하는 단백질도 가진 것이다. 전투병이 적군을 찾는 정보력을 갖춘 셈이다.
카티 세포 치료제는 정상 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세포만 공략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한 번 투여하면 체내에서 증식하며 암세포를 계속 죽여, ‘원샷 치료제’, ‘암세포의 연쇄파괴자’로도 불린다.

현재 카티 세포 치료제는 2017년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를 시작으로,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예스카타’, 영국 오토러스 테라퓨틱스의 ‘오캣질’ 등 총 7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혈액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킴리아와 예스카타 등이 도입됐으며, 이 중 킴리아만 건강 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액은 1회 투여 기준 3억6000만원에서 598만원으로 낮아졌다.
카티 세포 치료제는 림프종이나 다발성 골수종 같은 혈액암에서는 상용화됐지만, 전체 암의 90%를 차지하는 고형암 분야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어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엄 단장은 “고형암에서는 항원이 이질적이고 종양 주변의 미세환경이 복잡해 세포가 침투하기 어려워, 혈액암보다 개발이 훨씬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엄 단장이 이끄는 ‘면역세포 유전자치료제 전주기 기술개발사업’은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다부처가 참여하는 국가 연구 과제다. 5년간 50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돼 국내 연구자에게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GMP) 수준의 벡터(전달체)와 카티 세포를 공급한다. 이번 사업은 간암, 위암, 난소암, 두경부전이성 뇌암 등 재발성·불응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추진하는 게 목표다.
엄 단장은 “국산 카티 치료제 개발은 단순히 치료제 하나를 만드는 것을 넘어, 세포 치료제의 전주기 기술을 확보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국립암센터는 연구개발(R&D)부터 임상, 생산까지 통합된 플랫폼을 구축해 환자에게 신속히 투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는 서울대, 박셀바이오(9,690원 ▲ 20 0.21%)와 함께 지난 9월 고형암 대상 카티 세포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다. 현재 국립암센터는 교모세포종과 간암을, 서울대병원은 암세포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정 단백질 B7-H3를 표적으로 공격하는 간암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박셀바이오는 전남대와 위암·난소암을 표적하는 이중 표적 카티 기술을 연구 중이다.
엄 단장은 “현재 혈액암 대상 카티 치료제는 모두 해외에서 제조돼 국내로 들여오는 데만 3~4주, 환자에게 투여되기까지는 5주 정도 걸린다”며 “국내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카티 치료제를 개발하면 제조 기간을 단축하고 환자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 차원의 인프라 구축과 기술 개발을 통해 면역세포 치료의 대중화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