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 콘퍼런스, 400여명 참석자 모여 성황리에 진행
비트코인 현물 ETF 두고 여야 정책통 의견 차 눈길
“블록체인이 산업·금융 미래 바꾼다” 한 목소리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는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 시장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블록체인은 금융을 넘어 산업 전반과,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거대한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블록체인이 바꾸는 부(富)의 미래’를 주제로 한 조선비즈의 ‘2024 가상자산 콘퍼런스’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콘퍼런스인 이번 행사에는 정치권과 가상자산 시장, 학계와 법조계 등 각 분야에서 4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블록체인의 미래와 바람직한 제도의 도입 방향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의 방향성’을 주제로 정책을 만드는 여야 의원과 업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모여 머리를 맞대는 특별좌담 프로그램이 마련돼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야 최고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패널로 나섰고, 기획재정부 차관을 역임했던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가 좌장을 맡았다.
가장 뜨거운 화두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을 승인한 비트코인 현물 ETF였다. 국내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와 발행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윤창현 의원은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당국의 입장을 옹호한 반면, 김한규 의원은 금융위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미국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지만, 이는 ‘한번 해 보고 수익을 내 봐라. 당국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는 당국이 책임 소재에서 빠져나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금융 당국은 뭔가 잘못되면 미국에 비해 더 큰 원성과 비난을 받는다”며 “투자자 보호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금융위가 자본시장법의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면서 “이는 현행 자본시장법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엘살바도르 등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있기도 하고, 큰 틀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금융투자 상품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블록체인 산업혁명’과 ‘가상자산 투자의 미래’ 두 가지의 대(大)주제로 나눠 진행됐다. 오전에는 블록체인이 바꾸는 각 산업의 변화와 일본을 포함한 해외 국가들의 육성 전략 등을 다뤘다. 오후에는 최근 비트코인 현물 ETF를 포함해 투자의 측면에서 가상자산의 가치와 바람직한 금융 규제의 방향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산딥 네일왈 폴리곤 창업자는 웹3.0의 생태계와 탈중앙화의 혁신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면서 상호 연결돼 있고 결합 가능한 많은 블록체인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폴리곤의 ‘영지식(ZK)’ 기술의 힘으로 실현되고 있다”면서 “이 네트워크가 웹3.0이라고 불리는, 가스비 없는 인터넷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지식이란 대상자에게 본인의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을 ‘영지식 증명’이라고 통칭한다.
두번째 기조연설은 전 세계에서 수십만명의 X(구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리며 블록체인 업계의 ‘1타강사’로 꼽히는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가 맡았다. 그는 ‘블록체인이 가져올 금융 데이터’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주 대표는 ““고래(대형 투자자)들의 손바뀜과 장외거래(OTC) 흐름을 파악해 투자 시장의 현황을 읽을 수 있다”며 “증권과 달리 핵심 내부자의 거래도 가상자산 거래 물량과 투자시점 등의 정보로 유추해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재는 고래들이 가상자산을 대규모로 매집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강연에서는 일본의 블록체인 업체인 오아시스의 한국 사업을 이끌고 있는 도미닉 장 대표가 ‘일본의 블록체인 성장 전략’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비트코인 현물 ETF의 규제로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육성과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장 대표의 설명은 많은 청중들의 이목을 끌었다.
양영훈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웹3.0 산업의 진화’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수십년간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던 여러 산업에서 웹3.0을 활용한 실험과 개발이 진행 중이고, 곧 수많은 인프라와 경제 측면에서 변화가 나타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웹3.0을 통해 수익 구조가 활발하게 재편되고 있는 분야로 금융과 기술, 스포츠,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을 꼽았다.
엔터테인먼트사인 모드하우스의 백광현 부대표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새로운 성장과 수익 모델 발굴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드하우스는 걸그룹 ‘트리플S’가 소속된 기획사다. 백 대표는 “지금까지 자체 플랫폼인 ‘코스모’를 통해 150만개의 대체불가토큰(NFT)을 판매했다”면서 “앞으로 코스모를 ‘멀티 IP(지적재산권)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측면에서의 가상자산을 다루는 오후 세션의 첫번째 강연은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맡았다. 그는 토큰증권(STO)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근 금융 시장을 달구고 있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서도 빠른 검토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미국은 이미 11년 전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논의했지만, 한국은 1년 안에 압축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며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게 우선이다. 필요하다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가상자산 가격에 대한 신뢰를 세우고 가상자산 수탁 문제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김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데이터 독점 방지를 위해 블록체인이 더욱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며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에 투자할 때는 오픈소스와 협업, 거버넌스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하면, 제3자가 해당 소프트웨어를 한 단계 발전시켜 다시 무료로 재배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의사소통과 토론이 잘 이뤄지는 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조직이나 시스템 안에서 권한과 책임, 수익 등에 대한 배분과 의사 결정 규칙 등을 다루는 개념을 뜻한다.
다음 강연에 나선 김상민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운영위원은 현재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X)의 설립을 추진하는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 부산이 한국 블록체인 산업과 가상자산 시장에서 주도적인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퍼런스는 ‘가상자산 투자, 법과 제도의 방향성’을 주제로 한 각계 전문가들의 패널토론으로 마무리됐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와 김갑래 연구위원, 이용재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선임매니저, 이정수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좌장은 윤석열 정부의 금융위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다.
패널토의를 가장 뜨겁게 달군 주제 역시 비트코인 현물 ETF였다. 대부분의 패널들은 국내 금융사들의 경쟁력이 갖춰져 있고, 향후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갑래 “국내에도 경쟁력 있는 증권사가 있고 ETF 시장은 선점효과가 큰 만큼 양질으 ‘국내산 비트코인 현물 ETF’를 투자자가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재 매니저도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130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오는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차 법안의 초안이 나온 이후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