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SG 공시, 콘트롤 타워 부재로 혼란”
”중복 공시 해결 위한 관련법 제정 필요”
금융당국 ”기업 부담 줄이며 ESG 역량 강화 위해 노력”
국내 회계 전문가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ESG 공시 관리를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15일 조선비즈 주최로 열린 ‘2022 THE ESG 포럼’에서는 금융당국, 회계업계·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ESG 공시 의무화를 앞둔 기업의 전략 ▲ESG 공시 환경과 제도 개선 방안 ▲해외 ESG 공시 동향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열린 패널 토론에는 서정우 국민대 경영대학 경영학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박재흠 EY한영 ESG서비스 총괄리더,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ESG 경영실장, 권세원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고은해 서스틴베스트 리서치본부장,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이웅희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경영지원센터장, 김영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 공정시장과 사무관이 참여했다.
토론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 지속가능보고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사업보고서 등에 흩어져있는 ESG 관련 정보를 한데 모으고 관리해 양질의 ESG 정보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은 지난해 11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했고, 올해 3월에는 지속가능성 기준의 공시 초안을 발표했다.
박재흠 EY한영 ESG서비스 총괄리더(전무)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보고서를 만들어온 만큼, ESG는 기업에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각 기업에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이름으로 흩어져 있는 정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ESG 경영실장은 “ESG 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기업들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면서 “예컨대 탄소배출량 관련 공시를 위한 자료를 취합할 시 배출량 측정 기준의 모호성 혹은 중소협력사로부터 받은 데이터의 신뢰성 등 각종 자료 제출의 검토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이어 “정부가 ESG 공시를 규제 차원이 아닌, 정책적 지원·협력의 차원으로 판단하고 ESG 공시를 잘하는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을 고려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SG 관련 보고서를 여러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중복 공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법 제정이 필요성도 제기됐다.
국내 기업들이 공시를 위해 내는 사업보고서, 지배구조보고서, 환경보고서 등을 여러 기관에 중복 제출해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이웅희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경영지원센터장은 “글로벌 기업들도 중복 공시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 ISSB와 유럽연합(EU)도 여러 보고서의 상호 운용 가능성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면서 “향후 ISSB 기준에 따른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면, 중복 공시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국내법 제·개정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세원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ESG 공시 의무화가 본격화되기 전에 시스템을 정비해 ESG 공시를 관리할 콘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 기업들은 경영 관련 정보를 기획재정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 등에 각각 다른 자료들을 제출하는데, 여기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등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통일된 제출 창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고은해 서스틴베스트 리서치본부장은 기업 내부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없어 ESG 정보 취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한 기업 안에서도 ESG 관련 정보들이 CSR부서, 재무부서 등에 흩어져 있는데, ESG 이슈가 부상하며 여러 기관에서 기업에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 많아져 기업들의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ESG 콘트롤타워는 단순히 ESG지표의 평가모형을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스스로 정보를 관리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정리된 정보를 한곳에 모아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기업이 적극적인 ESG 경영을 하고, 공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김영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 공정시장과 사무관은 “ISSB에서 준비 중인 ESG 공시 기준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ISSB의 기준을 다소 완화하거나, 기업들에게 충분한 준비 기간을 부여하는 등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은 이를 반영해 세계 각 주요국들이 참여하는 ISSB 논의에서 적극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면서 “ISSB 기준이 확정된 이후에는 국내 환경에 맞춰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또 김 사무관은 “한국 ESG 공시 제도 방안을 마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원하는 것과 기업 수용 가능성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며 “ESG 공시가 기업과 투자자 양측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심도 있게 검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ESG 공시 제도를 안착시키고 기업의 ESG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관련 인력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총괄리더는 “ESG 시장의 체력이 갖춰져야 완전한 ESG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면서 “아직 ESG 시장은 초기 단계인데, 관련 인력이 상당히 부족한데다 이와 관련한 투자도 소극적인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확실성이 만연한 이 시기에 ESG는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일종의 보험효과를 가져다준다”면서 “장기적으로 ESG 관련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도 “양질의 ESG 공시를 위해선 신뢰성을 갖춘 ESG 인증 시스템이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라면서 “대학에서도 유망한 ESG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기본적인 ESG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