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소득 하위 계층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빈곤층 문제 해결 간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케빈 하셋 전(前)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이달 10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주도의 정책은 소득 하위 계층의 문제와 소득 불균형 완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의 활동폭을 넓혀주는 게 소득 하위 계층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셋 전 위원장은 조선비즈 주최로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9 글로벌경제·투자포럼’의 기조연설자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정부 주도의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은 빈곤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장 문제는 세율 인하·규제 완화 등 자본주의 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걸 트럼프 정부가 입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를 방치하는 정권은 결국 국민이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2017년 CEA 수장에 임명된 하셋 전 위원장은 올해 초까지 미·중 무역협상을 진두지휘하고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기 싸움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국가 간 약속을 지키는 나라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미·중 무역협상 과정이 녹록지 않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확신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좌익 성향의 정치가들을 보면 경제에서 말하는 수요·공급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해도 모른 척하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정부가 주도하는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가 경기 상황과 무관한 인상 목표치를 제시하면 기업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고숙련 노동자만 남기고 저숙련 노동자를 서서히 내보낼 수 있다. 저숙련 노동자의 상당수는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빈곤 계층이다. 즉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소득 하위 계층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빈곤층 문제 해결 간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29% 인상했다. 그런데 소득 하위 20%(1분위)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지난해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게 당연한 결과라는 건가.
"그렇다. 소득 하위 계층의 문제를 최저임금 강제 인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기업들 발목 붙잡는 규제 없애주고 세금 부담 줄여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새로운 게 아니다. 자본주의 원리다. 물론 당장 민심을 얻는 데는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이 계속되면 유권자는 자연스레 정권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백악관 근무 시절 트럼프 정부는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2016년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연 1.6% 수준이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저성장이 앞으로는 당연해질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는 표현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내 생각은 달랐다. 오바마 정부의 조세 정책과 각종 규제가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고 믿었다. 즉 정책의 실패로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 정책 환경을 오바마 집권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했다. 미국에 불리하게 설정된 무역 정책을 손질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35%에 이르던 법인세를 21%로 인하하는 등 친(親)기업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여 경제 성장에 시동을 걸었다."
-트럼프 정부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가.
"수치를 보라. 최근 확인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 노동시장에서 히스패닉계와 아프리카계의 실업률은 각각 3.9%, 5.5%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애인 실업률도 6.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의 실업률 역시 4.8%에 불과하다. 규제를 풀어 미국을 기업 운영하기 좋은 나라로 바꾼 결과다. CEA 위원장에 부임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숫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위원회는 트럼프 정책이 3~5년 내 미국 국민의 가계소득을 4000달러가량 올릴 것이라는 계산 결과를 도출했다. 올해 8월까지의 자료를 보면 가처분소득 증가가 거의 5200달러에 이른다."
-정부가 족쇄를 풀어도 기업만 그 효과를 누리고 일반 국민은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불신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기업이 살아나면 고용·생산성·임금 지표가 다 개선된다. 미국의 경우 연평균 임금 상승률이 3.5% 정도다. 그런데 이걸 소득 계층별로 보면 하위 10%의 임금 상승률이 8.9%로 눈에 띈다. 빈곤층이 누구보다도 덕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식량 지원을 받는 인구수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700만명가량 감소했다. 모두 부익부 빈익빈과는 거리가 먼 결과이지 않은가. 또 올해 2분기 자료를 보면 약 88만명이 창업에 뛰어들었다. 기업가 정신도 살아있다는 증거다."
-최근 전미실물경제협회(NABE)가 내년도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 중간값을 1.8%로 전망했다. 미국 경제도 한국처럼 점점 둔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기조강연 때도 언급했는데, 미국은 대선 시즌마다 경기 하강 신호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 참여자들의 관망세를 키우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이슈 말고도 민주당의 탄핵 공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의 무역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장애물을 잘 극복한다면 미국 경제는 안전한 구간에 접어들어 순항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만약 트럼프를 끌어내리려는 반대편 후보 중 한 명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미국 내 반(反)기업 정서가 커져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두 나라가 온탕과 냉탕을 너무 자주 오간다. 한국에서는 협상 타결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미국과 중국은 이 인터뷰 이후인 11일(현지 시각)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
"적어도 미국은 계속 좋은 의도로 접근하고 있다. 매번 어깃장을 놓는 건 중국이다. 중국은 비합리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 남들 눈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언행 스타일이 그럴 뿐이다. 실제 트럼프는 매우 치밀하고 원칙이 명확한 사람이다. 그 원칙은 중국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 기조 중 하나가 ‘국가 간 약속을 어기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국방비 분담금 인상을 촉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나토 회원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원국이 약속을 안 지킨다(2018년 기준 2% 지출 국가는 미국·영국·그리스·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5개국). 특히 독일은 경제적 여건이 충분하면서도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미국의 이전 정부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은 약속’이라는 주의다."
-당신 말만 들어서는 중국과의 합의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중국은 글로벌 경제 질서를 준수하느냐 안 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중국은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해 매년 10억~50억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주고 있다. 중국은 국제법을 지키는 나라가 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실패한다면 그건 과거 고립적인 전체주의 국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자유경제 시스템을 거부하고 냉전 시대로 회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국제 사회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 입장에서도 중국 투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안타까운 순간이 온다면 한국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 재설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협상에 참여한 내 경험으로는, 중국 내부에도 올바른 길로 가려는 세력이 분명 있다. 쉽지 않겠지만 결국에는 미·중 무역협상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