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18’에는 국내·외 학계와 업계를 주름잡는 전문가와 기업가들이 병원,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디지털 혁신,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최첨단 기술에 대한 활용과 헬스케어의 미래 전망을 공유했다.
특히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이 헬스케어 현장에 접목되는 현상에 대한 논의를 뛰어넘었다. 앞으로는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이 의료와 융합해 ‘개인’ 또는 ‘환자’가 직접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적극 관리·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개인맞춤형 의료 시대’를 구현할 것이라는 비전이 제시됐다.
조선비즈와 보건산업진흥원이 공동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올해 포럼의 주제는 ‘REAL 4차산업혁명, 헬스케어’로, 4차산업혁명을 현실화하고 있는 헬스케어를 다룬 1세션, 빅데이터·블록체인·인공지능(AI), 스마트워치의 진화를 다룬 2세션, 국내·외 보건산업의 이슈와 미래를 짚어보는 3세션으로 진행됐다.
이날 500명의 청중이 포럼에 참석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청중과 연자들 간의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현장에서는 업계 종사자들이 서로 만나 네트워크를 쌓고 의견을 활발히 나눴다.
김주한 서울대의대 의료정보학 교수는 "의료 산업은 세분화된 분야가 가장 많은 영역"라며 "구글, 애플 등 세계 최대 기업들이 이 분야에 달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를 함께 논의하는 흥미로운 자리였다"고 말했다.
구자민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겸 임프리메드 공동창업자는 "학생들과 함께 왔다"며 "손에 꼽히는 미국 병원의 빅데이터, 머신러닝 연구·개발 사례와 향후 계획들을 직접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 헬스케어 규제완화 가속 필요…‘인간+디지털’ 조화 혁신 이끌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이날 기조강연자로 참석해 헬스케어 분야의 혁신 속도가 가장 느린 원인을 진단했다. 장 위원장은 "규제를 이야기하면 의료민영화 같은 민감한 문제로 논의가 이어진다"며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는 주제만 얘기하면 혁신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릭 세닌 황(Erich Senin Huang) 미국 듀크대학교 의과대학(Duke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교수(MD·PhD)와 팀 모리스(Tim Morris) 엘스비어(Elsevier) 프로덕트&파트너십 디렉터는 디지털 혁신을 헬스케어의 새 지평을 여는 열쇠로 주목했다.
황 교수는 "미국은 100명이 수술을 하면 이 중 15명꼴로 합병증을 경험하는 등 병원과 정부 모두 막대한 비용과 위험 부담을 갖는다"면서 "머신러닝을 활용해 고위험군 환자와 저위험군 환자를 예측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리스 엘스비어 디렉터는 이같은 헬스케어와 디지털의 조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 전세계가 의료현장에서의 정보 공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정보시스템의 통합, 환자·의사간 쌍방향 소통, 의료정보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부원장은 "의료정보는 공공재라는 생각과 인류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는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며 "데이터의 보안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캐서린 쿠즈메스카스 심플리 바이털 헬스(Simply Vital Health)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면 데이터 공유를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쿠즈메스카스 대표는 "블록체인은 안전하기 때문에 데이터 접근성을 높일 수 있고 데이터 유동성도 확장할 수 있다"며 "2025년까지 1000억달러(113조1400억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 빅데이터·블록체인·인공지능·디지털 헬스케어 결합 실현하려면
두번째 세션에서는 빅데이터, 블록체인, 인공지능, 디지털헬스케어 등 각 분야를 다루는 국내 플레이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헬스케어 분야의 혁신을 위한 현실적인 과제들을 공유했다.
한현욱 차의과대학 정보의학교실 교수는 개인화된 의료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정보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유통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 데이터를 이동 및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개인에게 부여할 수 있으려면 데이터가 개인화돼야하고 신뢰성, 무결성이 입증되는 한편 적절한 보상도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기술·제도·정책·문화 등 생태계를 하루빨리 구축·실현해내야하는 큰 과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블록체인 활용과 검증을 포지티브 규제 또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 중 택일이 아닌 한데 모은 ‘샌드박스’로 풀어가야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다행히도 기존 포지티브 규제 방식에서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으나, 계속 방어막을 선제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 그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 문제가 생기는걸 미리 샌드박스 안에서 다 검증하는 방식으로 가야 혁신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기기를 이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데이터 수집-공유 플랫폼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헬스케어는 오랜시간 충분한 데이터가 확보돼야 건강을 예측해서 질병 발생을 막을 수 있는데 아직은 그 발전 정도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걸음 수나 심박수 같은 간단한 데이터 수집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데이터를 수집한 뒤 그것을 공유하는 플랫폼 조성이 필요하다"면서 "데이터의 의미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발전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데이터가 충분히 수집되고 분석 알고리즘이 고도화 된 미래 웨어러블 시대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자에게 필요한 헬스케어 가이드 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시장에서 살아남기에는 국내 규제와 의료 환경 등이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개발 제품을 국내 최초 인공지능(AI) 진단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스타트업 뷰노의 김현준 전략이사(CSO)는 청중으로부터 ‘식약처 승인 이후 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현재 우리가 매출을 끌어 올려 회사를 운영한다기보다는 뷰노의 미래 전망 좋게 보는 투자자 자금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면서 "국내 외에도 동남아, 미국, 중국 시장도 있어 진출해야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규제와 의료 환경 등은 좋지 않다"고 답했다.
김 이사는 "의료기기 시장은 육중한 의료 장비 중심 시장에서 스마트한 기기와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주도하며 점차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며 "규제 장벽이나 불안한 인식을 넘어서 혁신이 발생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 개인 맞춤형 신약 개발도 디지털 혁신…적극 ‘투자·지원’ 뒷받침돼야
디지털 혁신은 국내 의약품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으로도 주목받았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신약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개인 치료에 최적화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예경 메디데이터 데이터 사이언스 스페셜리스트는 "통상 임상실험은 성공확률 낮을 뿐 아니라 시행하는 기관이 길게는 10년 이상 최소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으며 비용도 천문학적"이라며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임상 실험결과를 하나의 틀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영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4차산업 전문위원은 "환자 수가 적은 병의 경우 신약 개발을 하더라도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암처럼 환자가 많은 병 위주로 개발이 진행돼 왔다"며 "AI를 이용하면 시간과 노동력을 아낄 수 있고 다양한 신약 후보군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디지털 혁신을 통한 헬스케어 분야의 새로운 기회를 살려 세계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신유원 보건산업진흥원 산업통계팀 책임연구원은 "2020년 보건산업 10대 이슈로 인공지능, 바이오시밀러, 재생의료,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 등이 꼽힌다"며 "우리나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덕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보건산업 대전망과 10대 이슈를 주제로 한 스페셜 세션 발표를 통해 "국내 굴지의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급속한 속도로 중국에 의해서 잠식을 당하거나 추격을 당하는 실정에서 헬스케어 분야는 어마어마한 기회가 될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