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만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감사부문 공인회계사는 "기업이 인공지능(AI) 활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AI를 많이 활용하는 게 오히려 투자자에겐 리스크로 인식될 수 있다"며 "AI를 잘 활용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된 감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잘 통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 회계사는 또 "장기적으로 AI와 관련된 공시는 기업들에게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며 "AI 활용과 관련한 지배구조와 통제를 어떻게 공시하고 주주와 투자자에게 설명할 지가 앞으로 기업에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허 회계사는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6 회계현안 심포지엄'에서 '도구에서 공시 대상으로-AI가 뒤흔드는 지속가능성 보고의 지형'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허 회계사에 따르면 AI는 이미 지속가능성 공시 과정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공급망 데이터 수집과 이중 중대성 평가, ESRS·GRI·ISSB·CDP 등 여러 공시기준 간 정보 연결부터 보고서 초안 작성까지 사람이 하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업계 추정 기준, AI를 도입하면 보고 시간과 비용을 약 70%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AI 활용이 효율성만 높이는 것은 아니다. AI 활용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위험도 키우고 있다.
허 회계사는 AI 활용이 늘어날수록 AI 자체가 기업의 새로운 리스크가 된다고 봤다. 그는 "AI 활용이 늘어날수록 기업이 통제해야 하는 범위가 커진다"며 이 자체가 리스크 요인이기 때문에 공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환경 측면에서 AI의 높은 전력 소비가 대표적인 위험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 산업의 전력 소비가 2023년 대비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유럽연합(EU)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도 같은 기간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AI 활용이 늘면서 전력뿐 아니라 용수와 폐열, 재생에너지 조달까지 측정·보고 대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기업이 AI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떻게 계산할지는 아직 통용되고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클라우드 등을 통해 이용하는 AI 서비스의 배출량을 Scope 3(기타 간접배출)로 어떻게 배분할지 통일된 기준이 없고, 실제 AI를 사용하는 '추론' 단계의 전력 소비도 공시 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허위정보와 딥페이크(Deepfake·AI를 활용한 합성물), 개인정보 침해, 저작권·학습 데이터, 고용 문제가 주요 위험으로 꼽힌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생성하거나 개인정보·저작권 문제를 일으킬 경우 소송이나 평판 훼손을 넘어 기업의 재무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가 AI 활용을 어떻게 감독하는 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글래스루이스 자료에 따르면 S&P100 기업의 52%는 이사회 차원의 AI 감독을 공시하고 있으며, 감독 체계와 공식 AI 정책을 모두 공개한 곳은 30%다. 미국 투자자의 65% 이상은 이사회의 AI 거버넌스와 윤리 감독에 대한 공시를 기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이 관리해야 할 대상이 늘어나는 가운데 주주들의 요구도 구체화되고 있다. 올해 일반적인 환경·사회 분야 주주 제안은 감소했지만, AI 관련 주주 제안은 오히려 늘었다. 요구 내용도 단순한 정보 공개를 넘어 허위정보 대응과 개인정보 보호, AI 인프라의 에너지 수요, 고용 영향 등 구체적인 사안으로 확대되고 있다.
허 회계사는 "투자자들은 기업이 AI를 어디까지 활용하는지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기업의 AI 활용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해외 기업들은 이미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사업보고서 등에 담고 있다. 메타는 AI와 관련한 개인정보·규제·사이버보안 위험을 공시하고 있고, 씨티그룹은 AI가 사기와 신원 도용, 고객정보 유출, 소송·규제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이사회 전체가 AI 관련 위험을 총괄하고 감사·기밀사업 및 보안·거버넌스 등 위원회가 영역별 감독을 나눠 맡는 구조를 공개하고 있다.
현재 AI 위험을 별도로 공시하도록 명시한 국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은 없다. 국내 KSSB 제1호 역시 AI에 특화된 지침은 두고 있지 않다. 다만 AI 활용에 따른 위험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현행 기준에서도 공시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돼 있다는 설명이다.
허 회계사는 기업이 사내 AI 활용 현황을 정리한 'AI 인벤토리'를 만들고 이사회 감독 체계와 AI 정책을 공시 가능한 수준으로 문서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력·용수·Scope 3 배출량 등 AI의 환경 영향을 측정할 체계도 선제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그는 올해부터 2028년까지 국내 기업의 기후공시 의무화와 AI 공시 압력이 함께 높아지는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공시가 'AI로 보고하는 기업'에서 'AI에 대해 보고하는 기업'으로 옮겨가는 전환기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