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조선비즈 ‘THE ESG 포럼’ 성황리 개최
“정보 생산 주체 기업, 내부통제 강화 필요”
기업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은 오는 2026년 이후부터 ESG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당초 공시 의무화 시점은 2025년이었으나, 정부가 기업 부담을 고려해 1년 이상 미뤘다. 준비 시간이 늘어났어도 기업 혼란은 여전하다. ESG 공시 자체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제도인 탓이다. 아직 구체적인 ESG 공시 기준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조선비즈는 ESG 공시의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고자 5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2023 THE ESG’ 포럼을 개최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번 포럼은 ‘ESG 공시 의무화 대응 방안 – ESG 공시 인프라 구축’을 주제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회계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ESG 공시 제정 현황을 점검하고, 공시 품질을 강화할 방안을 논의했다.
김영수 조선비즈 대표이사의 개회사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 의원은 축사를 통해 “기업의 ESG 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며 “ESG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 “ESG 데이터 관리·공시에 오류 많다”
첫 발표를 맡은 차경민 PwC컨설팅 파트너는 ESG 공시 정착을 위해 명확한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현재 기업의 ESG 데이터 관리와 공시에 오류가 많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해마다 ESG 공시와 관련된 데이터 종류와 수집 기준이 다르고 담당자에 따라 기준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 산출 기준이 정비되지 않아 개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관리해야 할 ESG 정보의 구체적인 범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과거 공시 데이터를 추적해 오류를 찾아내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 파트너는 기업이 내부적으로 디지털 시스템을 만들어 ESG 데이터 관리 주체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내부망 자체에서 ESG 데이터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을 통해 기업이 현재 보유한 데이터를 가공하고 공시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데이터를 생산하는 개별 조직에 데이터 관리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ESG 데이터의 산출·관리·모니터링을 책임지는 주체를 정하고 시스템화해 데이터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 국제 ESG 공시 기준, 이달 중 한국어 최종 번역본 공개
두 번째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유진 한국회계기준원 선임 연구위원은 이달 중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서 국문 번역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ISSB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관련한 기업의 공시 기준을 정하는 국제 위원회로, 올해 6월 ESG 국제 공시 기준(IFRS S1·S2)을 발표했다. 이 기준서의 한국어 번역본이 없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던 차에 한국회계기준원이 나선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9월에 번역본 초안을 발표한 후 관계자들에게 해석에 이견이 있는 부분을 물었다”며 “이를 반영해 개선된 형태의 번역본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번역본은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심의를 고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 연구위원은 ISSB의 ESG 공시 기준 중 하나인 S1과 관련해 ‘목적’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S1은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정보 공시에 대한 일반 요구 사항으로, 포괄적 공시 기준이 담겨 있다. 그는 “목적에 따라 기준서가 개발됐고, (공시) 작성자도 목적을 고려하면서 어떤 사항을 공시할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기후 관련 공시인 S2와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전략’과 ‘지표 및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ISSB는 S2의 전략을 통해 기업이 기후 관련 위험·기회를 설명하고 기후 회복력 평가 결과를 분석하도록 하고 있다. 지표 및 목표엔 온실가스 배출량, 전환 위험, 물리적 위험, 기후 관련 기회, 자본 배치, 내부 탄소 가격, 보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 연구위원은 “S1과 S2는 내년 1월 1일부터 유효하다”며 “내년 정보를 2025년부터 공시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 올바른 ESG 인증 위해 현재 기준부터 검토해야
마지막 주제 발표는 황근식 한국공인회계사회 감사인증기준 본부장이 맡았다. 황 본부장은 ESG 인증 품질을 강화하려면 윤리기준을 크게 높여야 한다고 했다. 황 본부장은 ESG 인증 품질을 높이기 위해 윤리기준과 품질 관리 기준의 정립, 전문가와의 협업·인증기관 간 협업의 활성화, ESG 정보 작성 내부통제의 강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ESG 정보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서는 ESG 인증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기업 스스로 ESG 정보 작성 관련 내부통제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 토론에 참석한 관계 당국과 회계업계, 학계 전문가들은 “ESG 공시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이 ESG 정보 수집·관리를 위한 자체 시스템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성식 한국표준협회 ESG 경영센터장은 “기업이 ESG 평가를 ‘어쩔 수 없이 한다’고 인식해 ESG 공시 준비를 비용으로 본다”면서 “기업이 ESG를 기업가치와 직결해 생각하고, 직접 마련한 내부 시스템을 상시로 모니터링·관리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ESG 데이터의 품질을 끌어올려 공시의 신뢰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세원 이화여대 교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양질의 ESG 정보를 가려내기 위해 ESG 평가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ESG로 새로운 금융시장과 투자 기회가 열린 셈인데,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원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공정시장과 사무관은 국내에서 ESG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다고 보긴 힘들다고 했다. 이 사무관은 “ESG는 대중적으론 친숙하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협의처와 함께 ESG 관련 다양한 공시·인증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