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서 밥을 먹는 이른바 ‘혼밥’은 일상이 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식당을 찾는 대신 씨리얼바나 닭가슴살, 프로틴 음료 등 대체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소비자가 급격히 늘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은 잘 보기 어렵고,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한 말)에게 ‘끼니’를 물어보는 것은 촌스러운 질문으로 통한다.
‘2021 대한민국 식품대상’에서 맛·영양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송윤주 가톨릭대 식품영양학 교수는 식품산업 트렌드로 ‘끼니(전통적인 의미의 식사)의 해체’를 꼽았다. 송 교수는 “요새 젊은이들은 그냥 걸어가다가 닭고기 튜브를 먹고, 드링크로 프로틴(단백질)을 타서 먹는 걸 식사라고 생각한다”면서 “끼니라는 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한 때 다이어트 붐이 강하게 일면서 식단관리 음식과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질 식사)를 찾는 소비자가 많았었다”면서 “이제는 지방도 줄이고 고기나 계란, 생선, 콩류에서 나오는 단백질로 만든 간편식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예전엔 한솥밥 문화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식문화였다면, 지금은 각자 입맛대로 먹는 게 자연스런 일이 됐다”면서 “자신이 선호하는 음식만 먹다보면 음식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 대표는 “소비자들은 가공음식을 구입할 때 대체로 유명한 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맛 없는 제품을 사는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품 선택에 있어서 초개인화 경향이 편향으로 이어져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 “식품 쏠림 현상으로 영양 밸런스 붕괴 걱정돼…'케어푸드’ 육성해야”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단백질 등 특정 성분 음식만 찾고, 가치 소비 현상으로 비건(채식주의자) 식품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영양 밸런스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식음료 전문 홍보사 리앤컴퍼니의 정유리 대표는 “음식 뿐만 아니라 세상 이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균형감)”라면서 “동물성 단백질은 피하고 식물성 단백질만 고집할 경우 추후 영양 밸런스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최근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비건 요리 수요가 상당히 늘었다”면서 “새로운 식품 산업의 길을 열어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러한 비건 요리가 일반식을 모두 대체할 순 없다”고 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스테비아 식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스테비아는 설탕보다 달지만 칼로리는 적어 식품과 농산물에 첨가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토망고’라고 불리는 ‘스테비아 토마토’가 대표적이다. 송 교수는 스테비아 토마토에 대해 “스테비아 성분의 영양학적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단순한 영양상 문제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마이크로바이옴 등 장내미생물에 끼치는 영향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맛은 달지만 열량이 낮다는 이유로 수요가 급격히 늘었지만 식품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고령층이나 당뇨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케어푸드’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국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고령층을 위한 ‘케어푸드’ 산업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희돈 한국식품연구원 박사는 “고령층이 급격히 늘고있는 반면, 노인들을 위한 식품 기술의 발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은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3대 섭식 분야에서 모두 어려움이 있다”면서 “이런 문제점들을 식품기업들이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기반을 닦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속도전에 내몰린 식품기업…혁신적인 식품, 높이 평가해야
식품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면서 식품 기업들은 속도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조기준 트라이어스앤컴퍼니 대표는 “최근 만난 한 기업인은 ‘소비 트렌드를 파악해서 제품을 출시하면 이미 그 땐 유행이 지났다’고 한다”면서 “소비자들의 식습관 변화를 따라잡기 위한 속도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요즘에는 제품을 출시한 뒤 소비자 반응을 보면서 맛을 살짝 수정하는 식의 ‘관리형 개발’이 많아졌다”면서 개발을 마치고 완성된 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조금씩 변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동민 강릉원주대 식품가공유통학과 교수는 “결국 식품회사에 필요한 것은 데이터”라면서 “소비자들의 제품 평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데이터를 모아야 제품화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식품박람회인 SIAL PARIS(파리 국제식품전시회)에서 유일한 아시안 심사위원인 문 교수는 국내 식품산업의 과제로 ‘혁신에 대한 고민’을 꼽았다. 그는 “‘먹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많지만 SIAL PARIS는 매년 ‘혁신상’을 수여하며 새로운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면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 국내에서는 식품 혁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윤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