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지구 온난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금융, 그린스완을 넘어서’라는 주제로 열린 ‘2022 미래금융포럼’이 28일 성황리에 열렸다.
녹색 백조를 뜻하는 ‘그린 스완’(Green Swan)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또는 금융위기를 뜻하는 단어다.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금융위기를 의미하는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파생한 말로, 급격한 기후변화가 몰고 올 전방위적인 충격을 의미한다.
이번 포럼에는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와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 등이 참석해 어느덧 금융산업에서 피할 수 없는 변수로 자리 잡은 기후리스크에 맞설 방안을 심도있게 짚어봤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삭스 교수는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시절 밀레니엄개발목표 특별자문관으로 일한 경험과 현재 UN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를 맡으면서 담당했던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기업들이 환경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점차 강화하고 있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불안정성이 커진 탓에 정책 대변환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전 세계 곳곳에서 터졌던 폭염과 가뭄, 초대형 산불, 거대 폭풍이나 홍수처럼 감당하기 힘든 극단적 기상이변을 예로 들며 “지구 평균 온도가 이전보다 급격히 오르면, 지난해 닥쳤던 재난은 전조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극한 기상 현상이 줄지어 벌어지면 금융업계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구온난화로 폭염과 홍수처럼 산업 생산에 큰 피해가 이어지면 제조업과 농·축산업을 막론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물리적 위험(physical risk)’에 노출된다. 만약 기업이나 개인이 폭염과 홍수, 산불로 피해를 입는다면 이 피해는 ‘배상’이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보험업계에 돌아온다. 보험사가 짊어질 배상책임위험(liability risk)이 커지면 커질수록 해당 보험사에 대출을 내준 은행도 피해를 입는다. 기후변화가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벌어지면서 금융위기가 불거지는 셈이다.
이어 강연대에 오른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역시 “탄소중립 시대에 미리 대응하지 못하면 3년 후에는 지금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며 “탄소중립 전환에 실패한 기업과 금융사는 매출과 투자수익이 감소하고 비용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소장은 “이미 주요 선진국은 탄소중립 관련 정책과 제도를 만들며 산업 구조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기후공시의무화 규정 초안을 발표했고, 중국은 재작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내 핵심 금속 소재 유통의 85%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기후 변화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신선한 시각도 나왔다. 세계적인 논객 이안 브레머가 설립한 유라시아 그룹의 라드 알카디리(Raad Alkadri) 상무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 사회의 대(對) 러시아 제재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추진하는 에너지 전환 속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알카디리 상무는 미국, 유럽 등이 주축이 된 국제 사회가 러시아에 가하는 제재가 세계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 수입을 중단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중심으로 에너지 전략을 재편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나 라틴 아메리카는 LNG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2050년까지 전 세계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 달성 여부에 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각국의 경제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이어지는 토의에서는 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문혜숙 KB금융지주 ESG본부 상무와 안욱상 한국산업은행 ESG·뉴딜기획부 부장 등과 함께 실제 국내 금융업계에서 녹색금융과 연계한 채권 발행과 투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의견을 나눴다.
문혜숙 상무는 “KB금융그룹이 2020년 9월 국내 금융그룹으로 처음으로 탈석탄 선언을 한 이후 많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에 동참했다”면서 “2021년엔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환경·사회 리스크 관리 체계(ESRM) 정책 등을 만드는 등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욱상 부장은 탄소 중립 관련 초기 분야 사업에 정책 금융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간 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해상풍력사업과 수상태양광사업, 수소인프라사업, 혁신기후기술 기업들에 대해 지분투자나 후순위 대출 등을 제공하고 있다”며 “특히 철강·시멘트 등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많은 국내 산업구조 특성상 전환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후 강연에서는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가 글로벌 주요 연기금 CIO들은 2020년 3월 ‘지속 가능한 자본시장을 위한 우리의 연대’ 선언을 소개하면서 “2000년대 들어 주류 금융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념이 지금은 전 세계 투자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다”며 “금융기관도 ESG를 반영해 장기적인 투자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우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이어진 특별 강연에서 “기후 변화 위기로 다양한 업종이 위기를 맞을 수 있지만, 금융권의 역할로 많은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며 “작년 한 해만 보더라도 에너지 전환을 위해 800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자됐고, 각 금융기관은 각 산업이 ‘넷제로(온실가스 순 배출량 0)’를 이행할 수 있게 명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기업의 기후공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기후변화 이슈에 대해 환경단체의 관심이 가장 컸지만 최근 세계의 여러 금융기관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 “기후 변화로 경제적 리스크가 생기고 실물경제에 변화가 오면 금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금융권이 주목하는 기후변화발 위기를 논하는 자리인 만큼, 금융계와 정계 전반에 걸쳐 주요 인물들이 두루 현장에 참여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김병욱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직접 자리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과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 등 주요 금융 연합회 대표들과 김태현 예금보험공사 사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등 주요 금융사 리더도 포럼에 참여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밖에 참석하지 못한 대학생과 직장인, 기업 경영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행사를 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