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닥친 ‘그린스완(기후변화가 초래할 금융위기)’을 막기 위해 금융업계 전체가 대처 방안을 갈구하는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실제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지만, 친환경 이미지로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는 이른바 ‘그린워싱’에 나서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정부까지 신경쓰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ESG 금융상품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금융규제당국은 그린워싱을 막기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3월부터 ‘지속가능 금융공시 규제(SFDR)’를 시행했다. EU 역내 금융서비스 기관은 투자행위와 상품과 관련해 지속가능성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기후,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와 노동자·인권·지역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에 관한 18개 지표가 여기에 담겼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자산운용사들은 펀드를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상품으로 마케팅하려면 엄격한 SFDR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최근 투자자들에게 ESG 투자에 관한 허술한 기준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고 당부하는 한편 당국 차원에서 공시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28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2 미래금융포럼′을 찾은 금융업계 전문가들 역시 국내 금융사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하나의 캐치프레이즈나 유행 정도로 여기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적인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에서 경영 전략과 사업 모델 전환을 담당하는 신우석 파트너는 “경쟁사가 기후 변화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확인하고 여기에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역할과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금융사들이 많은데, 아주 보수적으로 기후변화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며 “기후 변화라는 위기가 새로운 성장이나 가치 창출을 이끌어 낼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전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파트너는 이어 “이 주제가 갖는 함의나 시사점을 제대로 밝히고 사내에 전파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인력·조직을 갖춰야 한다”며 “경영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과제를 해결해야 그린워싱을 극복했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현석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주임교수 역시 “그린워싱을 하는 기업에 자금이 들어가고, 투자가 이어지면 녹색금융이나 ESG 금융 취지에 반(反)하게 된다”며 “명백한 표준안을 마련해서 기업이 지켜야 하는 정보를 적시에 공시하는 방식으로 그린워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규 한국기업평가 사업가치평가본부 ESG평가실 실장도 “올바른 방향으로 그린워싱을 방지하려면 공시 투명성이 중요하다”며 “데이터 위주로 정보를 공시하는 환경부 환경정보공시시스템을 넘어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전략적 측면까지 검증할 수 있는 이니셔티브 가입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SBTI)’처럼 세계적인 ESG 검증기관에 가입하고도 2~3년만 반짝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이후에는 나 몰라라 하는 행태는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몇몇 국내 기업은 주요 이니셔티브에 가입을 해 놓고도 팔로업(follow up)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정식 승인을 못 받거나, 심지어 실효(失效)가 된 경우도 있다”며 “가입할 때만 공들여 홍보를 하고 후속 조치에 책임감을 갖지 않는 행태에 대해 시장과 투자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