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금융의 새 시대를 열다’라는 주제로 29일 열린 ’2021 미래금융포럼'이 막을 내렸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디지털 금융 분야 리더들은 데이터, AI(인공지능), 클라우드서비스가 이끄는 금융 혁신이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고 한결같이 강조했다. 앞으로 몇 년 간 금융산업의 변화가 점차 가속화되면서 소비자 경험, 산업 간 또는 산업 내 경쟁 구도, 기업의 운영 방식 등에서 전방위적인 혁신 경쟁이 일어날 것이란 진단이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데이터,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이 미래 금융산업 발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은 위원장은 미국 프로야구에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구단 경영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야구계의 혁신을 일으킨 빌리 빈 사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빈 사장은 데이터의 가치를 발견하고 적용하는 ‘세이버매트릭스’라는 새로운 분석 기법을 도입했다”며 “이를 통해 스카우터(야구 선수를 평가하고 영입 의견을 내는 직원) 개인의 경험과 감에 의존하던 관습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미래금융포럼은 그동안 시대의 변화 흐름을 빠르게 포착해 유익한 인사이트(통찰력)의 장을 제공해왔다”고 행사를 소개했다.
◇”AI·클라우드가 금융산업 재편할 것”
라젠 셰스 구글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및 산업솔루션 담당 부사장은 “현재 AI의 발전 단계는 지난 1994년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 모자익(MOSAIC)이 선보였을 때와 유사하다”며 “모자익을 시작으로 인터넷 대중화가 이뤄지고 IT(정보기술) 산업이 크게 변화한 것처럼 AI로 인한 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셰스 부사장은 “앞으로 10년간 모든 산업, 기업들은 AI로 인한 대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며 “단언컨대 AI는 지난 50년간 우리가 봐온 기술 중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셰스 부사장은 금융산업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제조, 유통 등 산업 분야에서 혁신 서비스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구글의 기업용 솔루션인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금융의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고객 경험이 재구성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일체화된 옴니채널 운영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핀테크(FinTech)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이전과 비교해 72% 늘었다. 셰스 부사장은 “AI는 개인화된 고객 경험 제공, 대규모 데이터에 기반한 예측 능력 향상, 위험 관리 능력 강화 등 디지털 금융의 여러 분야에서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캇 멀린스 아마존웹서비스(AWS) 글로벌 금융서비스사업 개발 총괄은 디지털 금융에서 클라우드 서비스가 핵심 ‘도구’가 된 배경과, 클라우드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멀린스 총괄은 “클라우드 기술로 금융산업을 재편하고 있는 지금이 금융의 미래”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클라우드’라는 도구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쉽게 모으고 분석해, 고객 경험을 개선해 나가는 현재의 모습이 이미 금융업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멀린스 총괄은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2012~2020년 사업보고서를 예로 들면서 글로벌 은행들의 클라우드서비스 활용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체이스는 2015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데이터센터를 운영했지만, 이후 2020년이 되면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과시하는 수준으로 디지털 인프라를 전환했다. 멀린스 총괄은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데다 대규모 설비 확충도 유연하게 가능하다”고 JP모건이 클라우드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 디지털 은행인 스탈링뱅크의 예를 들면서 “이 은행은 단 몇 분 만에 계좌를 신청할 수 있고, 모바일 기기에서 빠르게 결제한 뒤 곧바로 지출 내역들을 볼 수 있다”며 “클라우드에서 핵심 뱅킹 기반을 구축한 덕”이라고 했다.카카오페이는 다양한 니즈를 가지는 소비자들과 다양한 금융상품들을 제공하는 금융사들을 쉽고 편리하게 연결해주는 마켓플레이스로 발전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 금융소비자마다 맞춤형 상품을 만들 수 있고, 적확한 금융상품을 추천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야한다. 금융 상품에 대한 반품이나 취소도 용이해져야 할 것이다.이승효 카카오페이 서비스기획 총괄부사장(CPO)
◇국내 대표 금융혁신 전문가 경험 공유
이어진 강연에서는 국내 대표 금융혁신 전문가들이 나서서 각자 경험에서 나온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이승효 카카오페이 서비스기획 총괄부사장(CPO)은 “카카오페이는 앞으로 핀커머스플랫폼(FinCommerce Platform·일종의 금융상품 판매 전자장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온라인 쇼핑이나 이커머스 서비스가 당일배송, 간편결제, 간편반품 등으로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린 것처럼 금융 분야에서 플랫폼 서비스를 구축할 것”이라며 “금융회사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사장은 현재 금융회사가 상품개발, 상품전시, 판매, 사후관리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이다고 봤다. 특히 그는 금융회사가 갖는 핵심 문제로 낮은 판매전환율(마케팅 노력이 실제 상품 판매로 이어지는 비율)을 꼽았다. “소비자 대상 최적화가 안되다보니 만족도가 낮고, 상품을 구매할 지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판매 채널마다 판매 방식이 다르다보니 불편함을 늘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다보니 고객의 니즈와 불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금융사발 ‘고객 혁신’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AI 기반의 금융투자회사인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의 정인영 대표는 핀테크 서비스 개발에서 AI의 역할과 의미를 주제로 사업 경험에서 우러난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정 대표는 “AI는 투자상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고객 경험을 좋게 하고 만족도를 높이는 일종의 ‘촉매’”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일반적인 금융회사는 어떻게 자산을 구성해 운용할 것인지를 고민하지만, 디셈버앤컴퍼니는 AI를 통해 고객 대상 서비스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한때 ‘국민게임’이라 불리기도 했던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면서 “성공적인 게임은 끊임없는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자들이 게임에 대한 애착을 갖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티아 나델라 CEO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부활한 것도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전략은 디지털이 아니라 고객에 대해 고민할 때 성공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윤진수 KB금융지주 IT총괄 부행장은 KB금융이 클라우드 서비스 등 IT 인프라를 구축할 때 겪었던 경험을 자세히 소개했다. 윤 부행장은 삼성전자, 삼성SDS, 현대카드 등을 거쳐 지난 2019년 KB금융에 영입됐다. 윤 부행장은 “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신기술 수요가 급증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니즈도 늘고 있는데, 퍼블릭 클라우드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며 “담당 조직, 전문 인력, 핵심 역량 확보, 보안 등 인프라 구축 등에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부행장은 “KB금융은 오픈소스 기술을 바탕으로 은행, 카드, 증권 등 모든 계열사가 하나의 플랫폼을 공유하는 ‘원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업무 요건에 따라 유연하게 IT서비스 역량의 이동-분산-배치가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라는 설명이다. “대고객 서비스, 플랫폼까지도 클라우드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핵심 기술과 역량, 인력의 내재화”라고 윤 부행장은 지적했다.
◇”기술은 고객 중심 혁신 위한 수단” 공감대
김용진 서강대 교수(경영학) 사회로 열린 대담이 이어졌다. 정 대표는 “AI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만능 수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설립하고 AI 기반 투자 기법과 고객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AI는 고객이 안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I를 기반으로 이해한 고객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윤 부행장은 “금융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역량을 가진 금융회사가 각자가 가진 노하우와 경험을 함께 활용해 금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에 참석한 김성훈 자산관리실장은 “핀테크 회사의 태생은 고객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없애기 위한 데에 있다”며 “디지털 금융에서 고객 중심 사고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진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금융 산업이 금융상품을 만드는 데만 급급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는 시점”이라며 “결국 금융 산업의 변화는 고객의 문제를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고, 같이 살아가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 미래금융포럼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통해 이날 오후 2시부터 생중계됐다.
= 조귀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