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표준 인증 시스템 도입 필요 강조
“비상장사라도 채권 발행하면 정보 인증 대상에 포함시켜야” 주장도
‘ESG경영의 키, 지속가능성 정보 보고와 인증’이라는 주제로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1년 THE ESG 포럼’이 막을 내렸다. 이날 포럼은 조선비즈 유튜브 채널과 공인회계사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국내기업들이 공개하는 ESG 경영정보를 표준화된 기준에 따라 공시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ESG 경영정보도 일종의 공시 정보이기 때문에 회계법인 등 제3의 감사인이 인증을 통해 점검하는 작업도 강화해 ESG 정보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ESG 경영이 점점 확산하고 있는 만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ESG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투명하게 인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들은 ESG 정보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형태로 자율 공시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업지배구조, 양성평등 현황 등 ESG 관련 정보들이 담겨 있다. 금융위원회는 2030년 이후부터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전체에 이런 정보를 의무 공시토록 할 계획이다. 또 제3의 기관에서 이런 ESG 정보를 공시 전에 인증하는 제도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축사를 통해 “ESG 정보 공시가 내실화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착돼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회계업계, 기업 등 다양한 시장 참가자들 공동의 대응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라며 “이번 포럼을 통해 근본적인 성찰과 발전 방향이 모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재옥 국회 정무위원장(국민의힘)도 축사를 통해 “ESG 정보 공시에 앞서 시급히 해결할 중요한 문제는 투자자와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ESG 평가와 인증”이라며 “국회가 앞장서서 국내의 ESG 평가와 인증체계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신뢰받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주제발표자로 나온 권세원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ESG 정보 공개에 대해 3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가 지적한 문제점들은 ▲ESG 정보 인증을 위한 통일된 제도 및 기준의 부재 ▲ESG 인증을 감독·규제하는 규제기관의 부재 ▲ESG 인증 업무 제공자의 적격성 부족 등이다.
현재 기업들은 ESG 정보를 2가지 국제 기준인 AA1000AS와 ISAE3000 중 선택해서 인증받는다. AA1000AS는 지속가능경영 관련 국제표준 제정기관인 ‘어카운트어빌리티(AccountAbility)’가 제정한 기준이고 ISAE3000은 국제감사인증기준위원회(IAASB)가 제정한 기준이다.
두 기준 중 기업들이 편의대로 선택해 ESG 정보를 인증하면서 국내기업들이 공개하는 ESG 정보의 종류나 공개 범위 등이 제각각인 상태다. 또 이렇게 국제 기준을 차용해서 회계법인 등이 인증을 하다 보니 정보 인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ESG 정보 공시를 감독, 규제할 수 있는 전담 기관도 없다.
권 교수는 “검증된 기관이 ESG 정보를 인증해야 기업이 공개하는 ESG 정보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사례를 검토해 ESG 정보의 인증제도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황근식 한국공인회계사회 감사기준팀장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인증 기준’에 대해 분석했다. 황 팀장도 국내 기업들이 ESG 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발표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신뢰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정성(定性)적인 언급이 많이 되고 있어, 이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준거기준이 없다”면서 “(정보를) 접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라고 했다. 기업들의 ESG 정보에 대해 신뢰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황 팀장은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기업의 정확한 ESG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홍보 목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며 ESG 정보의 신뢰도 제고가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주제 발표에 이어진 토론은 서정우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의 진행으로 권 교수, 황 팀장과 함께 송병관 금융위원회 기업회계팀장, 권미엽 삼일회계법인 ESG 플랫폼 파트너,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사업본부장이 참석했다.
정부를 대표해 나온 송 팀장은 “한국은 2025년까지 ESG 경영정보를 자율공시하도록 하고 2030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방침”이라면서도 “아직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 의무화를 확대해갈지 결정된 게 없고,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공개 정보를 한국거래소 공시로 처리하도록 할지, 사업보고서 내 주요 사항으로 공개하도록 할지 등 구체적인 공시 방법도 정해놓은 게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송 팀장은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게 된다면 (감사인 등) 제3자의 인증을 받도록 할지도 중요 검토사항 중 하나”라며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하겠지만 기업들의 목소리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권미엽 파트너는 기업의 ESG 정보 공개의 대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은 회사 자체 정보는 물론 필요할 경우 협력사에 대한 정보까지 공시하도록 범위를 정해서 ESG 경영정보를 자율공시하고 있는데 정보 공개를 의무화할 경우에는 그 의무화 대상을 (협력사까지 확대할지 등) 어디까지로 할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진수 본부장은 비상장 기업에 대한 ESG 경영정보의 공개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 본부장은 “ESG 채권을 발행하는 비상장사에 대한 ESG 경영 정보에 대한 투자기업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비상장사에 대해서도 ESG 경영정보의 의무 공개 절차와 인증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우 교수는 “한국이 유럽연합(EU)보다 상대적으로 ESG 정보 공개와 인증에 대해 신중히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도 정착 등을 앞으로 철저히 준비해야 국제적 수준에 맞고 국내에서도 인정받는 기준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정부와 업계가 국제 사회에서도 통할 ESG 정보 공개 시스템을 고민할 시기라고 언급했다.
= 정해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