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이베이의 기업가치를 가른 것은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었습니다. 향후 사업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에 따라 몸값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는 29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1 글로벌경제·투자포럼’에 연사로 나서 이 같이 말했다. VIG파트너스는 2005년 설립된 보고펀드를 모태로 한 사모펀드 운용사다. 버거킹과 BC카드, 동양생명 등의 경영권을 인수 후 매각해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 사례를 남겼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난 유동성 확대 국면에서 전 세계 자금이 성장주에 집중되고 있다며, 성장주의 기업 가치가 급등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TAM’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TAM이란 기업이 향후 영위할 것으로 예상되거나, 영위할 가능성이 있는 사업의 전체 규모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세탁소 체인 업체와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해주는 비대면 모바일 세탁 애플리케이션(앱)을 비교하면 TAM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자가 전국의 세탁 시장을 TAM으로 삼는다면, 후자는 시장 확장이 가능하다. 세탁물을 수거·배송하는 김에 세탁과 관련된 생활용품을 함께 판매하는 등 신사업을 결합해 부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TAM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TAM 확장 덕에 기업 가치가 급등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커머스 업체 쿠팡을 꼽았다. 쿠팡은 지난 3월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했는데, 당시 시가총액이 100조원에 육박했다. 반면 이베이코리아는 이마트에 매각된 시점(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4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 대표는 “VIG파트너스 같은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과거 회사가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지에 주목했지만, 쿠팡은 이익과 전혀 무관한 기업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쿠팡은 상품을 직접 사입(仕入)해서 판매·배송하고 있어 회계상 매출 규모는 크나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반면 이베이는 상품의 매매를 중개하는 오픈마켓이기 때문에 회계상 매출액은 작아도 꾸준한 이익을 낸다. 이 때문에 기존 시각으로 볼 때 쿠팡은 이베이보다 훨씬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쿠팡은 TAM을 확장함으로써 높은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먼저, 쿠팡은 신선 식품 배송 서비스 ‘로켓프레시’를 출시해 마켓컬리와 경쟁하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며 ‘요기요’와 2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국내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약 23조원에 달한다고 이 대표는 추산했다. 그 외에도 쿠팡은 결제 서비스 ‘쿠팡페이’까지 내놓으며 120조원의 결제 대행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테슬라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기업 가치를 가른 것도 TAM 차이였다고 설명했다. 테슬라는 27일(현지 시각) 사상 최고가인 1037.8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약 1200조원으로 현대차의 약 27배에 달한다. 이 대표는 “테슬라의 기업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연간 판매 대수, 이익 수준 등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가 아닌 IT 기업에 가까운 만큼, 테슬라가 향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해나갈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 외에도 TAM에 주목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3G캐피탈을 소개했다. 3G캐피탈은 2004년 설립된 브라질계 사모펀드 운용사로, 서로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을 인수·결합해 TAM을 확장한 경험을 갖고 있다.
3G캐피탈은 지난 2010년 40억달러에 버거킹 경영권을 사들이고 나서 케첩과 마요네즈 기업 하인즈를 인수했고, 이후 ‘캐나다의 던킨’으로 불리는 도넛·커피 체인 업체 팀호튼스를 인수했다. 팀호튼스와 버거킹은 현재 합병돼 ‘레스토랑브랜드인터내셔널(RBI)’이라는 대기업이 됐다.
이 대표는 국내 기업들도 TAM을 확장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마트를 언급했다. 이 대표는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와 의류 이커머스 업체 더블유컨셉을 인수해 온라인 유통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며 “성수동 본사 사옥을 매각한 것도 온라인 사업에서 승부수를 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 노자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