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 경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다. 소비자의 생각보다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 행동을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
빅데이터 연구 권위자인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선비즈 유통산업포럼에서 '유통업계 빅데이터 활용전략'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OK큐피드'가 분석한 빅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OK큐피드 분석 결과, 남성과 여성 고객 모두 데이트 상대 희망 연령으로 '0살 연상~0살 연하'까지 입력을 했지만 실제 채팅으로 대화를 신청한 상대는 남녀(30대 이상) 모두 연하로 생각과 실제 행동은 달랐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어 "지금은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다"며 "소셜 네트워크에 데이터로 다 있다"고 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이런 제품을 살 것이냐, 사지 않을 것이냐고 묻는다고 해서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소비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유리돼 나온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아마존과 넷플릭스를 꼽았다. 조 교수는 특히 아마존에 대해 "고객에 대해 고객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그는 "아마존은 고객의 관심사와 이전 구매 내역을 통해 고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상품을 가장 먼저 노출시킨다"며 "이런 우선 노출을 통해 얻은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고 했다.
이어 "아마존은 우선 노출에서 한발 더 나가 '선배송' 시스템까지 개발했다"며 "고객이 어떤 상품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고객이 주문과 결제를 하기도 전에 드론으로 제품을 배송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객에겐 배송된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라고 한다"며 "반품 신청을 하지 않으면 등록된 계좌에서 자동 결제되는 방식으로 판매가 이뤄진다"고 했다.
조 교수는 이날 연설에서 기업들이 빅데이터 분석을 △신사업 개발 △품질 예측 △고객 유치 △인사 관리 등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빅데이터를 신사업 개발에 활용한 사례로 GE를 들었다. GE는 항공엔진운항 데이터를 분석해 각 부품의 고장 가능 확률을 계산하고 최적 보전 서비스를 시작했다. GE는 현재 항공 엔진 최적 보전 서비스의 매출이 기존 항공 엔진 판매 매출보다 더 많다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품질 예측 활용 사례로는 보르도 와인을 들었다. 양질의 와인이 만들어진 해와 기후를 분석해 와인 품질 예측 공식을 만들었고, 이제는 해당년도의 기후 분석을 토대로 와인 품질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단 것이다. 고객 유치 부분에선 카드사를 사례로 제시했다. 조 교수는 "빅데이터를 가장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드사"라며 "카드 내역을 통해 고객의 위치 정보뿐만 아니라 관심사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의 특성을 파악해 새로운 프로모션 등의 마케팅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 관리 활용 방법에 대해선 오피스 사무 기기 회사인 제록스의 경험을 소개했다. 제록스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조기 퇴사자의 유형을 분석했다. 제록스 분석 결과, 회사에서 집이 멀고 확실한 교통수단이 없는 직원, 친구가 없거나 너무 많은 소셜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직원, 공감을 너무 잘하거나 창의력이 부족한 직원 등이 조기 퇴직한다는 인사이트가 나왔다. 제록스는 이같은 인사이트를 신규 채용에 반영해 조기퇴사자를 20% 줄였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조 교수는 빅데이터에 대해 "그동안 전문지식과 경험, 감에 의해 만들어진 경영 인사이트에 새로운 재료가 나온 것"이라며 "기존의 인사이트 원천에 비해 늦게 활용되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기존의 경험과 감에 의해 형성된 인사이트는 '의견'에 불과하다"면서 "의견을 기반으로 한 해법은 운이 좋아 맞아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의견을 기반으로 한 인사이트는 해당 의견자의 직급에 따라 계급장이 붙는다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한 인사이트엔 계급장이 붙지 않는다. 계급장을 떼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또 빅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결론을 정해놓고 이에 맞는 데이터를 찾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데이터를 계속 고문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경향을 '데이터 고문'이라고 한다"고 했다.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찾아야지, 인사이트를 증명하기 위해 데이터를 찾는 것은 올바른 순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와 함께 "기업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선 현업에 있는 실무자들이 빅데이터와 빅데이터 분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빅데이터 전문가가 되려면 수년간 공부를 해야 하지만, 현업에 필요한 수준은 2~4주 가량의 기초 이해 교육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요리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에 있는 전문 셰프 스쿨을 가는 방법도 있지만, 백화점이나 마트의 문화센터에서 주말 쿠킹 강좌로도 배울 수 있다"면서 "현업 실무자에게 필요한 빅데이터 지식 수준은 후자의 방식으로 배우면 된다"고 했다.
조 교수는 "기업이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최고 경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실무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고 경영자가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지지해야 한다"며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온 인사이트가 경영진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고 경영자는 빅데이터를 회사 전체의 의제로 만들고 부서 간 의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빅데이터를 활용한 경영의 성패는 최고 경영자의 비전과 리더십이 결정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