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핀테크 업체인 키드렛 코인(KIDLetCoin)은 분산원장기술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혁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의 기술력보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건 이 회사의 창립자가 9살이었다는 점이다. 2년 전에 설립된 이 회사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카에데 다케나카(Kaede Takenaka)는 이제 열한살이 됐다.
10대가 주목할 만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고 혁신을 주도하는 건 이제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비탈릭 부테린이 이더리움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처음 만든 건 19살 때의 일이다. 미국의 전자결제 스타트업인 스트라이프를 만든 패트릭과 존 콜리슨 형제도 나이가 21살과 19살에 불과했다. 이들 기업은 실리콘밸리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세계 정상급 핀테크 전문가이자 '금융혁명 2030'의 저자인 크리스 스키너 더파이낸서 대표는 13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0 미래금융포럼' 기조강연에서 "미래의 금융 서비스는 나 같은 흰머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10대가 만드는 플랫폼에서 나온다"고 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API나 앱을 만드는 간단한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핀테크 회사를 만들고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또 은행과 같은 기존 금융회사가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조와 업무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이때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10~20년차 중간 관리자인 이른바 ‘얼어붙은 중간층’의 두려움을 해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스키너 대표는 미국의 핀테크 업체 ‘스트라이프’의 사례를 들어 금융산업의 기본 틀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설립된 스트라이프는 7줄의 자바 코드만으로 웹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가능하게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웹페이지에 유튜브 동영상을 삽입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자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자결제의 혁신으로 불리며 단숨에 세계적인 기업들과 제휴를 맺었다. 스키너 대표는 "스트라이프는 과거에는 은행에 가서 며칠을 씨름했을 일을 단 7줄의 코드만으로 해결했다"며 "단순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극찬했다.
스트라이프는 설립 5년 만에 90억달러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에는 가치가 200억달러로 뛰었고, 다시 1년 뒤에는 35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한화로 약 42조8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신한지주시가총액(14조원)의 3배다.
스키너 대표는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를 전통적인 금융기관과 비교하면 커머스뱅크의 7배에 달하고 도이치은행보다는 가치가 2.5배 높다. BBVA은행보다도 가치가 높고 ING는 스트라이프보다 약간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을 뿐"이라며 "200년 된 전통적인 금융기관은 산업혁명과 지폐의 시대에 태어나 지역별 네트워크에 의존한다면 10년 된 스트라이프는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업가치의 차이가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핀테크 기업의 빠른 성장은 전통적인 금융기관들이 디지털 전환을 더는 머뭇거리지 못하는 이유다. 스키너 대표는 "대부분의 은행이 디지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은행 업무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며 "기존의 업무방식을 고수하면서 디지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방식의 은행업에 도전하면서 디지털을 은행의 핵심 사업으로 삼는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기존 금융기관이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그런 자원이 오히려 금융기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스키너 대표는 스트라이프가 전체 개발자의 43%를 오래된 코드를 고치는 데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밖에 안 된 혁신적인 핀테크 업체도 인력의 절반 가까이를 오래된 코드를 고치는 데 투입한다면, 전통적인 금융기관은 디지털 인력의 거의 전부를 오래된 코드를 고치는 데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 아무리 많은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어도 핀테크 업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다.
스키너 대표는 전통 금융기관 중에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나선 사례로 JP모간체이스를 꼽았다. JP모간은 전 임직원 25만6000명 가운데 5만명을 디지털 인력인 엔지니어로 뽑았다. 전체 직원의 20% 정도가 개발자인 셈이다. 덕분에 JP모간은 더디지만 확실하게 기술 주도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스키너 대표는 JP모간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핀테크 업체인 앤트파이낸셜은 전체 직원의 65%가 개발자나 엔지니어"라며 "JP모간과 앤트파이낸셜의 사례는 디지털화라는 급격한 변화가 금융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행을 비롯한 전통 금융업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스키너 대표는 기술의 발전이 은행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예측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은행이 디지털화돼도 가치를 저장하고 다루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은행의 역할은 디지털화 덕분에 더 강화되고 보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적극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고, 조직 구조와 업무 방식을 디지털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10~20년차의 중간 관리자들의 반발을 뚫고 조직을 수평화하고 업무 속도를 빠르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키너 대표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ANZ은행은 디지털 전환을 하면서 ‘얼어붙은 중간층’이라는 현상을 겪었다. 얼어붙은 중간층은 조직이 겪게 될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중간관리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직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10~20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부서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다. 결국 이 두려움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의사소통이 핵심이며 누구와도 빠르게 의사소통 할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감사팀이나 재무팀 직원, 또는 대출담당자들이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술부서가 독립 부서로 분리되지 않고 현업 부서와 함께 있으면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스키너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세계적인 확산이 금융산업의 디지털화를 더 촉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유럽의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논의한 것보다 더 많은 의사결정을 지난 몇 주 동안 하고 있다"며 "팬데믹으로 모든 사람이 디지털 전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앞으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