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자이한 "韓, 중국인지 일본인지 선택하는 순간 올 것"

국제 정세 분석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피터 자이한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지금의 자유무역 세계질서는 조만간 막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자립에 성공한 미국이 더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역적인 분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고, 미국 덕분에 자유로운 무역체제 속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따온 국가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혼란스럽던 경쟁체제로 다시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이한은 미국이 자유경제 세계의 보안관 역할에서 물러나는 순간 'G2'로 불릴 만큼 성장한 중국이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런 경제·외교 정책 기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1995년 이후 25년간 꾸준히 이어진 미국 정부의 변함없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피터 자이한이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피터 자이한이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자이한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서는 한국이 과거 60년간 성공을 거둔 경제성장 모델로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며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미국에 줄 수 있는 이점을 지금의 두 배, 세 배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라는 게 자이한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의 일본은 냉전시대보다 미국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한국은 쇠퇴하는 중국과 부상하는 일본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지난 10일 '2019 글로벌경제·투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자이한을 인터뷰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완승을 예상했는데.

"중국은 에너지원과 식품 생산에 쓰이는 비료의 75%를 수입에 의존한다. 외화벌이도 국제무역으로 충당한다. 미국이 국제무역에서 발을 빼면 중국은 에너지나 식품, 전기, 안보 등 어느 것 하나 자급자족할 수가 없다. 중국은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실 지금의 단일국가의 모습을 갖춘 건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의 통합된 국가로 중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내부적인 조치 때문이 아니라 중국을 둘러싼 세계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바뀌면 중국은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구호가 유행했다.

"그런 구호는 의미 없어진다. 중국 경제가 계속 호조를 보여야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의미가 있고, 미국이 세계 안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해야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두 가지 전제가 모두 의미 없어진다."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해 최근 몇 년 간 미국 외교정책은 트럼프 행정부만의 돌발적인 결정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렇지 않다.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보면 1995년 이후로는 꾸준히 다른 국가에 관심이 없었다. 클린턴, 부시, 오바마 대통령 모두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별나 보일 수 있지만 지난 25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은 동맹국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문제에 관심이 큰 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달라질 게 없다. 24명의 대선 주자 중 동북아 문제에 관심이 있는 후보는 단 한 명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상시화될 것이라고 보는 건가.

"트럼프 행정부는 소수의 국가와만 지속적인 무역관계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멕시코, 영국, 캐나다, 호주, 한국 정도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청에 추가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무역관계를 이어나가려면 확실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상대방 국가가 얼마나 잘 들어줄 지를 보고 결정한다. 중국이 이런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없어도 생존에 문제가 없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관계가 단절되면 정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피터 자이한이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피터 자이한이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나.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일단 지난 60년간 이어온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로는 현재 세계 질서가 붕괴된 이후에는 더 성장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은 늘 세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기적처럼 이뤘다. 군사정권이 붕괴된 이후 민주주의로 빠르게 전환했고,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대전환이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진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솔직히 다른 나라가 한국의 상황이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겠지만, 한국이기에 기대할 만한 것도 있다고 본다."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모두 들어줘야 한다는 건가.

"미국의 우방국으로 남으려면 한국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국은 앞으로 동맹국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나 사드배치에서의 갈등은 미국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는 이유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나 참모들을 제치고 본인이 직접 옵션이나 여러 사안을 검토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성공적으로 한 국가가 일본이다. 지금은 냉전시대보다 미·일 협력이 강화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미국의 좋은 우방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적합한 동맹국으로 변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평가가 거의 없다."

-구체적으로 일본이 어떻게 미국의 마음을 사로 잡았나.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미국에 생산기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백악관과 연락할 채널이 생기는 셈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인구 감소와 열악한 금융 환경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프쇼어링을 선택했고,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지금의 세계질서가 무너져도 일본은 타격을 많이 받지 않는다. 미래에 중국과 전면갈등이 벌어져도 일본은 해군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누를 것이다. 결국 한국은 쇠퇴하는 중국과 부상하는 일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물론 한국 국민이 일본과 손을 잡는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국 기업도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더 이전해야 한다는 건가.

"일단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탈중국' 움직임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배워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3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일단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이다. 아시아 지역의 공급체인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이 미국 내에 새로운 제조업 체인을 확보하려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이 좋다. 미국 중서부와 남동부 지역도 중요하다. 중서부는 에너지와 곡물 생산기지 역할을 한다. 정치적으로도 입김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남동부는 해외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한국이 공략할 만한 여지가 많다."

-결국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한국은 미국의 더 강력한 동맹국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이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런 걸 감수하면서 미국의 동맹으로 남을지는 한국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다. 다만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이 원하는 동맹의 조건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국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여기에 부합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적어야 한다. 한국은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은 시장 규모도 계속 줄고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 왜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한국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하면 '호주 정도로 미국과 신의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영국 정도로 경제적인 역량을 유지하고, 캐나다처럼 다른 나라와 적대관계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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