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헬름(Dieter Helm) 옥스퍼드 대학교 경제정책학과 교수는 17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는 중국이 탈(脫)탄소를 하지 않는 한 기후 변화가 멈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디터 헬름 교수는 이날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1 미래에너지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중국 지도부가 어떤 약속을 하든 중국에서는 지속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새로운 석탄발전소 건설에 앞서 기후에 대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은 현재 유럽에서 폐쇄되는 수를 합친 것 이상으로 많은 석탄 발전소를 새로 건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미래에너지포럼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조선비즈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디터 헬름 교수는 다만 중국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모두 중국인을 위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탄소집약도가 높은 중국 제품의 상당수가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유럽은 철강, 석유·화학, 석탄발전 등 에너지 집약 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지만, 관련 제품은 중국 등 제3국에서 생산해 수입한다.
디터 헬름 교수는 “중국에서 생산돼 전 세계로 수출되는 강철, 알루미늄, 비료, 석유·화학 제품은 미국과 유럽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생산되고 있다”며 “강철은 어디에서 생산되더라도 단지 강철일 뿐이다. 그 강철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발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이 아닌 탄소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탄소집약 제품의 수입을 국내 생산과 동일한 기준으로 취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자국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관세(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유럽과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은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디터 헬름 교수는 “중국 수준의 탄소 배출량을 낸 후 다시 세계 반대편으로 운송하는데,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더 나쁘다”며 “일부 국가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 기후 변화를 멈출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 기업, 개인의 탄소 소비량을 의미하는 ‘탄소 발자국'”이라고 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원자력 발전 도입은 선택 사항이지만, 그 위험성이 석탄발전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려졌다고 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1000테라와트시(TWh)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태양광(지붕)은 440명, 천연가스 4000명, 석탄은 10만명이 사망하는 동안 원자력은 90명(체르노빌, 후쿠시마 포함)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터 헬름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던 2011년 중국 석탄 광산에서 5000여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고 했다.
수소 경제의 발전을 위해선 정부와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소경제를 위한 정부 주도의 이니셔티브가 필요하고, 이와 함께 정부와 시장이 파트너십을 구축해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나 시장이 단독으로 수소경제를 추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개선의 여지가 많지만, 신기술의 등장으로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라고 봤다.
그는 농업 분야에서도 탄소배출 저감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 세계 농업·임업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 비율은 24% 수준이다. 전 세계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경제 성장으로 육류 소비가 늘어날 경우 농·임업의 탄소 배출량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디터 헬름 교수는 전망했다. 이에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농업을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농업 분야에선 비료와 살충제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열대 우림을 파괴해 농지를 만드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며 “토양을 관리하고 농업에 의한 탄소배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했다.
=송기영 기자, 정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