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산업은 국민 건강, 안전, 생명윤리와 연계되는 만큼 한국에서는 규제 강도가 높은 편이다. 규제로 인해 의료 분야 신기술 도입과 신사업 진출이 어렵고 최신 의료기술 혜택을 환자가 받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9일 조선비즈가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한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 2017’에서는 헬스케어 분야 규제로 인한 문제 현황과 개선 방안에 대한 ‘오픈토크’가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안전이나 생명윤리와 직결된 규제는 필요하지만 신기술 도입과 신사업 진출, 최신 혁신 치료법의 임상 범위 등에 대해서는 유연한 규제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픈토크 좌장은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김정훈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이윤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정책지원본부장, 하태길 일자리위원회 서기관, 문여정 인터베스트 이사,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석했다.
김정훈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규제로 인해 새로운 치료법 연구가 늦어지고 혜택받는 환자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정훈 교수는 “한국의 경우 생명 위급, 희귀 질환이 아니면 유전자 교정 기술 임상에 대한 제한을 받는다”며 “생체 유전자 논문을 먼저 게재했는데도 연구에 머물러 있어 중국이 올해 초 먼저 연구 임상을 시작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느 쪽이 먼저 했냐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큰 위해를 주지 않고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희귀질환 유전자 교정 기술 대상 범위에서 아이들이 많이 벗어나 있는 상황”이라며 “2014년 미숙아 망막병증 소아 환자는 45만명에 달하는데 치료비도 많이 드는 질병이어서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규제로 인해 신산업 진출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여정 인터베스트 이사는 “정부나 업계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창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포지티브 규제(허용 사업 외에는 규제하는 방식) 때문에 창업이 필요한 부분이 있더라도 의사들이 나서기 쉽지 않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확장성이 있더라도 병원에 있는 교수가 바깥의 기업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어 헬스케어 사업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헬스케어 산업 규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도 직접 제시했다.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대부분 별도로 만들어지는 신산업 규제는 만들어지긴 쉽지만 개정은 어렵다”며 “오히려 신산업 분야가 생겨났을 때는 규제 기관이 각 분야별 규제 과학자를 키워 해당 영역을 깊게 학습한 후 규제를 만들 수 있도록 기관 자체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정책지원본부장은 “동일하게 패턴화된 규제를 유연화해 차별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치료 안전 규제는 열거주의에 의한 사회적 규제로 모든 규제를 지키라는 의미인데, 산업지향과 안전지향을 함께 추구해 부문별 규제 강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과 생명윤리가 민감한 부분은 포지티브 규제를 해야 하지만 산업지향적 보건 신사업 부문은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허용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좌장을 맡은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은 “각 영역 최전선에서 느끼는 규제문제를 직접 살펴볼 수 있었는데, 생명윤리와 직결된 부분에서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신기술 도입과 신산업 확대에 있어서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며 “문재인 케어가 산업화를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발전을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하태길 서기관은 이 자리에 직접 참여해 일자리위원회가 보건의료 헬스케어 산업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태길 서기관은 “일자리위원회는 보건 의료 일자리 특별 위원회를 설치할 정도로 무게를 두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좋은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