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조직에서 최악의 리더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서 직원을 어린애 취급(infantilize)하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조직원의 역량을 리더의 기대치 수준에 머무르게 묶어두지요. 지금 필요한 태도는 조직원이 최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겁니다. 직원이 앞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며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믿어주는 리더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닐로퍼 머천트(Nilofer Merchant) 루비콘컨설팅 창업자는 이 시대에 맞는 리더의 역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머천트는 애플과 오토데스크 등에서 경영전략, 시장진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한 뒤 컨설턴트로 변신한 조직 경영 전문가다. 애플·어도비·로지텍·휼렛팩커드·노키아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의 경영전략 자문에 응한 그는 여러 공기업과 사기업 이사회에서 활약하며 ‘혁신계의 제인 본드(Jane Bond of Innovation)’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경영학계 오스카상이라는 ‘싱커스 50(Thinkers 50)’에 2013~2015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머천트는 21~22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스마트클라우드쇼 2016’ 연사로 한국을 찾았다. 그와 만나 이 시대에 맞는 조직 경영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다음은 머천트와의 일문일답.
― 혁신적인 조직 경영 방식을 이야기할 때 '실리콘밸리 스타일'을 말하곤 합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한 가지 스타일로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산업에는 묵은 생각과 참신한 생각이 공존합니다. 굳이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회사 내부 어느 곳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든, 누가 내놓는 아이디어든, 심지어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까지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는 조직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실리콘밸리식 경영입니다.”
― 예로 들만한 기업을 꼽는다면요.
"구글은 '재능(talent)'의 범위를 대단히 넓게 바라봅니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지닌 선천적인 자질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지요.
그러므로 협력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조직을 꾸려가는 모델을 이야기할 때 구글이야말로 그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구글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요. 구글은 원래 MIT, 하버드 등 명문대 출신에 학점 좋은 사람들만 뽑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어떤 직원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지 파악하고서는 그 방침을 전환했습니다. 왜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없는가를 깨달은 거지요. 어떻게 하면 '누구든지' 이 조직에 들어와서 흥미와 뛰어난 분야를 고려하고,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 파악하고 배치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 그런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도구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제 케케묵은 단어가 되고 말았지만 구글은 ‘인터넷’, ‘인트라넷’을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 차원의 전략, 부서 전략, 상품 전략 등 모든 내용을 조직원이 함께 공유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를 열람하며 공부합니다. 누구든지 추가하고 싶은 내용을 추가하고, 궁금한 점을 실시간으로 질문하고 답변할 수 있지요. 이 조직 안에서는 끊임없이 Q&A세션이 진행됩니다. 이 점이야말로 구글같은 혁신 조직과 전통적인 수직적 조직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 수직적인 조직과 수평적인 조직은 어떻게 다른가요.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모든 정보와 시스템을 리더가 쥐고 있어야 하죠. ‘내가 이번 프로젝트는 이렇게 진행해보려고 구상하고 있는데 좀 더 발전시켜서 가져와 보세요’ 하는 식이죠. 구글같은 조직에서는 리더가 ‘우리 회사의 전략에 맞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생각을 이야기해주면 나도 내 생각을 이야기해볼게요’ 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집니다. 자연스럽게 팀원 모두가 프로젝트에 대해 갖는 책임감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게 되지요.”
― 리더의 역할이 전과 달라진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이 배는 이쪽에 대고 저 배는 저쪽에 대'라는 식으로 항구 관리자(harbour master)같은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할이 '신뢰 구축자(trust builder)'로 바뀐 겁니다. 누구에게든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려는 문화를 심고, 리스크를 짊어져도 괜찮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게 이 시대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조직에서는
'네가 이 문제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을테니 네게 돈을 주고 고용한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를 네게 물어보면 바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죠. 그렇지만 이런 조직에서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 해법을 찾지 못합니다. 직원의
'가능성'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조직은 다릅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와 만나든 직원이 새롭게 지식을 습득하고 해법을 찾아나갈 것으로 믿어주면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당연히 모든 걸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지식을 배워서 활용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믿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겁니다. 이런 태도가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 상벌체계에도 그런 사고방식이 반영돼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조직에서 ‘상'은 ‘배움'에 대한 상이 돼야 합니다.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그 실수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면 성공을 거둔 것 못지않게 칭찬하고 상을 주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물론 일을 진행할 때 책임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사실을 습득하고 다음 번에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볼 계획이다 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도는 격려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배우는 게 없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문제 삼아야죠. 이런 조직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도를 지켜보는 직원들도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도와줄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협력합니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창출되는 조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 이 시대에 맞는 조직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조직원이 무언가 ‘배울 수 있게’ 장려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게 동기를 끊임없이 부여할 수 있어야죠. 캐롤 드웩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고정된 마음가짐(fixed mindset)’과 ‘성장하는 마음가짐(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어요. ‘고정된 마음가짐’이란 이미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으며 어떤 실패도 경험하지 않겠다고 여기는 자세입니다. 반대로 무엇이든 배워나갈 수 있다는 자세가 ‘성장하는 마음가짐’이죠. 최악의 리더는 고정된 마음가짐을 가진 리더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한 번도 직면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풀어가야 할테니까요. 최악의 리더는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정보를 혼자 쥐고 있으려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직원을 어린애 취급(infantilize)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태도는 조직원의 역량을 리더의 기대치 수준으로 묶어두게 됩니다. 나 역시 조직을 이끄는 리더이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매번 느끼는 일입니다만, 아이도 직원도 내가 기대하는 만큼 행동하고 성장합니다.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딱 그 정도의 기대치에 맞게 행동합니다.”
― 리더의 자리에서 정확하게 조직의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징후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조직원이 얼마나 변화를 이끌 때 적극적인지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건강하지 못한 조직에서는 누구도 먼저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행동해서 리스크를 대신 져주기를 기다리니까요. 그러나 진짜로 정직하게 돌아가는 조직이라면 '내가 먼저 변화를 주도할게'라고 하죠. 또 한 가지 위험 징후는 아무도 구체적인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죠. 누구나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지 않는 거예요. 방 안의 코끼리(누구나 볼 수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문제들)를 방치하지 않고 이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창업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문화를 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위적인 조직이 단계적으로 창의적인 조직 혹은 소통이 잘 되는 조직으로 변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좋은 질문을 하세요. 저는 매일 종이 한켠에 내가 오늘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정리해서 적어둡니다. 적어도 다섯 개 정도는 적어두죠. 그리고 회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이걸 배우려면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를 생각하고, 그와 관련한 질문을 합니다. 재미있게도 내가 뭔가를 배우겠다는 목적을 갖고 질문하면 더 좋은 질문이 나오더군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질문거리를 생각하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에 대해서도 더 목적을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멍청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질문이 계속해서 나오는 팀의 실적이 30%는 좋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멍청한 질문이든 아닌 질문이든, 단답형 대답을 유도하지 않고 생각을 끌어내는 질문은 계속해서 서로가 대화하게 만들고 의문점을 만들고 개선 방향을 찾게 합니다.”
―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걷기의 중요성도 강조해오신 걸로 압니다.
“미국에서 언행일치를 말할 때 흔히 쓰는 관용구로 ‘walk the talk’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따라 대화와 걷기를 함께해 보는 것이 경영에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되더군요. 실리콘밸리 기업에서는 ‘걷기 미팅’이 널리 퍼진 문화가 됐어요. 출발은 몇 년 전 내 습관을 바꾼 데서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오후 4시부터 젊은 사업가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는 정기 미팅이 있었는데, 매번 커피숍에 앉아서 하거나 회의실에 앉아서 했죠. 그런데 늘 그런 식으로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까웠어요. 아이 엄마이자 CEO이자 멘토로 늘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한 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거든요. 특히 운동을 하거나 할 때는 내가 더 생산적인 일에 투자해야 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힘들었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걸으면서 하는 미팅입니다. 그날 경험은 놀라웠어요. 같은 사람들인데 함께 바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훨씬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좋은 날씨를 함께 즐기면서 추억을 쌓았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딱딱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걷는 것 자체가 ’같은 문제를 직면한 동지'라는 느낌을 준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이런 '걷기'가 나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왔는데요, 걸으며 대화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된 것은 물론 직원들과의 상호소통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기업을 이끄는 리더가 갖춰야 할 거의 모든 미덕을 다 가르쳐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직원의 말을 경청하는 것, 우리가 '같은 팀'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죠. 여러 리더들이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에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함께 걸으며 대화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죠.”
― 소규모 그룹이 아닌 대기업에서도 실천이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대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보통 조직의 규모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고방식을 바꿔보세요. 대규모 조직이란 결국 소그룹이 모이고 또 모여 만들어진 겁니다. 한 번은 600여명이 참석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는데, 청중에게 이런 말을 해봤어요. 아무나 한 사람만 붙들고 각자가 오늘 이 콘퍼런스에서 배워가는 점 한 가지를 설명해보라고요. 그리고 30분을 줬죠. 그러자 첫 15분 정도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면서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의견이 맞는 사람끼리 연결점을 찾아 소규모 그룹을 형성했어요. 그 그룹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진짜 교류가 이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겁니다. 이런 문화야말로 연결성이 중요한 소셜시대에 맞는 조직 문화라고 할 수 있겠죠.”
=윤예나 기자